"평준화가 고교 획일화 조장 수월성·평등성 모두 죽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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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일(사진) 교육부총리 후보자는 "획일적 교육 때문에 수월성(秀越性.우수 학생들을 키워내는 교육)도 평등성도 모두 죽었다. 평준화는 적극적 평등정책이 되지 못하고, 고교의 획일화를 조장하는 면이 강하다"며 평준화 교육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 한국 교육의 근본 문제를 '국가주의적 통제정책으로 인한 경직된 획일성'으로 규정하고 사실상 교육인적자원부 권한의 대폭적인 축소를 촉구했다.

김 후보자의 주장은 평등주의 교육 틀을 고수하는 청와대.교육부 방침과는 상당 부분 다르다. 따라서 그가 교육부총리에 지명될 경우 현 정부의 논란 많은 3불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등 금지)이 바뀔지가 관심사다.

김 후보자는 5일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주최의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미래 교육 비전과 전략'이라는 주제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원고는 인쇄까지 마쳤으나 김 후보자는 교육부총리에 지명되자 3일 이 학술 모임 참석을 취소했다.

다음은 김 부총리 후보자 원고의 주요 내용.

◆ "정부가 모든 걸 통제하는 교육"=노무현 대통령은 현 정부의 정책은 앞선 정부들의 교육개혁 정책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10년 이상 교육개혁을 추진했지만 개혁의 성과는 안 나타나고 국민의 불만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한국 교육의 근본 문제는 국가주의적 통제정책으로 인한 교육의 경직된 획일성과 교육 투자정책의 실패로 인한 교육 여건의 빈곤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정상의 장기간 지속에 기인한 교육자들의 교육정신 상실이다.

역대 정부는 근본 문제보다는 단기적인 민원 문제 해결에 치중했다. 개혁이 개악으로 흐르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한국 교육제도와 정책의 국가주의적 성격은 뿌리가 깊고 강하다. 세계은행의 한국 교육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중앙정부가 학교 형태는 물론 학생 입학.교육과정.교과서.교사 임용.입학금.수업료까지 규제하고 있으며 교육 시스템 전반에 대한 통제가 교육을 경직시키고 있다. 역대 정부는 교육에 대한 통제는 강화하면서 교육에 대한 투자를 외면했다.

◆ "수월성.평등성 살려야 한다"=학교에서 재능별 수업과 능력별 수업을 조장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의 학교들은 획일성으로 인하여 수월성도 평등성도 모두 죽어 있다. 고교 평준화가 평등정책의 하나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평준화는 적극적인 평등 정책이 되지 못하고, 고등학교의 획일화를 조장하는 면이 강하다. 학교의 다양화, 교육과정 운영의 유연화가 시급하다.

국가 통제의 경직성과 획일성을 청산하고 학교와 대학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법적 규정과 정책에 유연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중등 교육에 관한 행정은 시.도교육청으로 대폭 이관하고, 고등교육에 관한 행정은 '고등교육위원회'를 설치해 이 기구에 위임해야 한다.

사립학교와 대학에 지배구조를 둘러싼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이에 관한 법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주요 교과별 학력고사 필요"=한국 교육의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정책적 실패는 각급 학교의 졸업제도는 방치하고 입학제도에만 집착한 데서 기인한다. '입학은 어려워도 졸업은 쉽다'는 말이 한국 교육의 특성을 드러낸다.

입학정책에서 졸업정책으로 전환한다는 뜻은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데 있다. 교육의 질을 정확히 확인한다는 뜻에서 각급 학교의 주요 교과별 전국 학력고사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 전국 학력고사는 주요 교과와 학생 개인이 선택하는 한두 교과에 대해 시행하고 그 결과를 학생 지도와 아울러 학교의 교육여건을 분석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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