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하는 동구 열기의 현자을 가다(22)|40년만에 되살아난 헝가리 증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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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헝가리 주식거래위원회는 정치개혁으로 진통하는 동구 각국이 지향하는 시장경제의 표본적 모델이자 가장 비사회주의적 경제활동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헝가리 주식거래위원회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지난 87년말 헝가리 25개 은행들을 중심으로해 발족했다.
헝가리는 1백25년전인 1865년부터 1948년까지 이미 주식발행의 경험을 갖고 있었으나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서면서 주식발행이 전면 중단됐었다.
지난 사년 동구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경제개혁을 단행했던 헝가리는 지난83년부터 다시 사채형식으로 채권발행을 허용했다. 그 결과 4년만에 채권거래 시장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 주식거래위원회다.
부다페스드 번화가 바치가의 국제무역센터 빌딩 2층에서 열리는 주식시장은 27개 은행대표들이 2O여평 크기의 방에 둘러 앉아 채권거래를 벌이고 있었다.
오전10시부터 1시간30분동안 계속되는 이「 주식시장」은 아직도 거래가 채권위주인「반쏙 시장」이다.
그러나 각 은행대표로 참석한 딜러들은 사뭇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이었다.

<3회 복창후 낙찰>
이 주식시장은 웬만한 한국증권회사 시내지점 규모에도 미치지 못하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했다. 그러나 참석자는 모두 정장을 한「신사」들로 법정같은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거래장에는 10여대의 컴퓨터 단말기가 각 테이블 위에 놓여 있어 거래담당자들인 딜러들이 수시로 채권 목록을 체크하고 있었다.
거래방식은 헝가리 주식거래위원회 사무국장 이오니 하르디여사가 상장 채권을 경매에 부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원매자가 값을 부르면 하르디여사가 이를 복창하고 세번 복창에도 더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없으면 낙찰되는 방식이었다.
경제학박사인 하르디여사는 이를 호가(Qutcry)방식에의한 「구두낙찰」 이라고 불렀다.
이 주식시장은 설립 당시에는 매주 1회 화요일에 열렸으나 지난해 10월부터는 주2회, 11월 주4회로 늘어났다가 지난해 12월부터는 주5회로 휴일을 빼고 매일 열리고 있다.
헝가리 주식시장에서의 채권거래량은 월평균 3억포린트 (5백만달러) 로 주식시장에 나온 2백80억 포인트의10% 남짓한 수준이다.
헝가리에는 현재 1백7O개회사가 1천1백50억 포인트(20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으나 주식시장에 나온 것은 개인소유 1백95억포인트, 기업소유 78억포인트로 전체의 5분의1 밖에 되지 않는다.
이중 1백억 포인트 규모의 채권은 헝가리 국민 개인 누구든지 매입이 가능하다.

<주주될 꿈 부풀어>
하르디여사는 헝가리국민들이 최근 단기채권 구입에 흥미를 보여 채권 값이 오르고 있다며 최근 상장한 무역회사 노보트레이드의 채권은 지수가 이미 2백을 돌파 했다고 말했다.
헝가리국민들이 채권매입에 열의를 보이는 것은 이들 사채가 국가의 시장경제도입에 따라 주식으로 전환될 것에 대비, 단순 상환 수익대신 큰기업의 주주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주주가 탄생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시장경제에 익숙하지 못한 다른 동구국가들 사이에서는 경이적 사건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하르디여사는 현재 각 은행이 주식시장의 주축이 되고 있는 것은 일반국민이 자본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한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갓 태동한 헝가리 주식거래시장의 앞날은 낙관적』 이라고 했다.
하르디여사는 이미 오스트리아 빈에 헝가리 채권을 상장시켜 이미 국제시장에도 진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앞으로 외국투자가들이 헝가리 주식시장에 진출할 날도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자유치가 목적>
헝가리가 국내 주식시장을 설립한 것은 국가경제회복을·위한 외국자본 유치가 주목적이다.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서는 서방 자본주의식 시장경제를 도입, 주식시장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4O대의 한 지식인은 이 주식시장을 이렇게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헝가리에서 개혁결과 보이지 않게된 것은 붉은 별이고 보이게 된 것은 주식시장이다』
헝가리는 곳곳에서 주요 건물에 장식됐던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별을 하나씩 제거하고 있다.
헝가리에서는 공산주의가 사라져 가고 있고 주식시장을 통해 시장경제라는 이름을 빌린 자본주의 정신이 눈에 띄게 스며들고 있는 셈이다.
글-김동수부국장, 사진-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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