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고쳐 자위권 행사" 강한 일본 만들기 야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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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일본 호'가 어디로 향할지 항해도가 드러났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이 1일 히로시마(廣島)에서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발표한 공약(제목 '아름다운 나라, 일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강한 일본'이다. 실현 수단으로는 '전면적인 헌법 개정'과 '교육개혁'을 내세웠다.

20일 실시되는 자민당 총재 선거, 즉 총리 선거는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재무상과 아소 다로(麻生太郞) 외상과의 3파전이지만 아베 장관의 압승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럴 경우 그는 22일 국회의 지명을 거쳐 정식 총리로 취임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이 '우정민영화 정권' '구정치 타파 정권'이었다면 아베 정권은 '자주개헌 추진 정권' '애국심 정권'으로 표현할 수 있다. 민족주의적 보수 색채가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이념적으로는 전후 정권 중 가장 우파가 될 공산이 크지만 성격상 실제 행동은 고이즈미 정권보다 유연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베 장관은 이날 "성실하게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일하는, 미래를 믿고 사는 보통 사람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이라며 "세계 모든 나라로부터 존경받는 아름다운 일본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이즈미 정권 이후 틀어진 주변국과의 관계와 관련, "한국과 중국 등 인접국과의 신뢰관계 강화에 노력하겠다"며 "'열린 아시아' 속에서의 강력한 연대를 확립해 나가자"고 호소했다.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선 "야스쿠니에 가느냐, 안 가느냐로 정상회담 개최 여부가 정해진다는 건 잘못된 것"이라며 고이즈미 총리의 지론을 옹호하면서도 "정상회담을 부활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해 나가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 외교를 등한시하며 외곬으로 흘렀던 고이즈미 정권과는 차별화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 "최우선 공약은 헌법 개정"=그에게 개헌은 가업(家業)이다.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물려준 '숙제'다. 그는 개헌을 통해 경제 위상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추고 국제사회에서 상응하는 외교발언권을 인정받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날 "21세기 국가상에 어울리는 신헌법 제정에 매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그가 총리가 되면 바로 개헌을 위한 각종 물밑 작업이 이뤄질 것이 확실하다.

◆ "애국심 교육해야"=아베 장관은 이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일본에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기본법의 정신에 애국심을 명문화하겠다는 뜻이다. 아베 장관은 그동안 '국가=악'으로 인식시킨 현행 교육 때문에 역사교과서에 종군위안부가 기술되는 등 이른바 '자학(自虐) 사관'이 뿌리내렸다고 강변해 왔다.

따라서 사회의 급격한 우경화를 우려하는 일본 내 시민단체들과의 한바탕 마찰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그는 교육기본법 개정안을 이르면 올 가을 임시국회에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 "일.미 동맹이 기본"=아베 장관은 "세계와 아시아를 위해 일.미 동맹을 강화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외교관계의 기본을 미.일 동맹에 두겠다는 뜻이다. 따지고 보면 양국 관계의 출발점은 외할아버지인 기시 전 총리가 일본 내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관철한 '미.일 안보 개정'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꼬일 대로 꼬인 한국.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구체적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목표로 내걸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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