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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이름은 김-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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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키미! 네 이름 철자, 이렇게 쓰는 거 맞지?" 나는 키미의 이름을 적어 놓았던 페이지를 펴 키미에게 내밀었다. 그는 내 수첩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들여다보더니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키미(Kimmy)? 내 이름은 키미가 아니야. 김…미, Kim-mee라고 쓰는 거야." 캄보디아에서 태국으로 넘어오는 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나 같은 방을 쓰게 된 여자. 처음 봤을 땐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었던 여자. 그러나 아무 하고도 말을 섞지 않고 혼자 앉아 있는 내게 "내 이름은 키미야"라고 말하며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던 여자. 6일 동안 함께 방을 쓰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키미라고 불렀던 여자의 이름이 키미가 아니라 김-미였다니!

"김-미? 이건 마치 한국사람 이름 같은데…." "맞아. 난 한국에서 태어났어."

김-미는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입양되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프랑스까지 바다를 건너간 조그만 여자 아이, 이 여자 아이에 대한 것이라고는 오로지 성이 김(Kim)이라는 것만 알고 있던 양부모는 그에게 김-미(Kim-mee)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내가 네 이름을 잘못 불러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김-미는 자주 겪는 일이라고 했다. 김-미의 가족도 모두 키미라고 부르기 때문에 괜찮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미는 정말 많은 수의 아이들이 한국으로부터 입양되고 있는데, 그 이유를 아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자라면서 김-미는 가끔씩 한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그중에는 네 진짜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으냐, 혹은 진짜 부모를 만나러 한국에 가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김-미는 진짜(real)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물론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한번쯤은 만나고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역시 자신의 진짜 부모는 피부색은 전혀 다르지만 예전에도 함께였고 지금도 함께 있는, 두 분 양부모라는 확신을 갖게 될 뿐이라는 것이었다.

"내 부모님은 두 분 모두 백인이지. 부모님, 부모님의 친척들, 친구들, 거의 모두가 백인이야. 아주 어렸을 땐데 한번은 내가 물었지. 엄마! 엄마는 왜 나를 입양했어요? 입양할 거면 이왕이면 하얀 애가 좋지 않았을까요? 그때 우리 엄마 아빤 나한테 이렇게 말씀하셨지. 뭐가 문젠데? 넌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노멀(normal.정상)이잖아! 하얗든 노랗든 까맣든 우리한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아. 그럼 넌, 네 동생이 하얀 애면 더 좋았겠니? 너한테 동생의 까만 피부가 문제가 되는 거야?"

김-미의 양부모는 김-미 말고도 아이를 한 명 더 입양했는데 그 아이는 아프리카 태생의 흑인이라는 것이었다. 김-미는 자신의 남동생에 대해 말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나보다는 내 남동생이 더 많이 힘들었을 거야. 얼마 전에 내 남동생은 애인과 헤어졌는데, 그 애의 애인은 하얀 피부에 금발 머리가 아름다운 아가씨였지.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내 남동생은 자라면서 많은 내상을 입었을 게 분명해. 우리가 유년을 보낸 동네에선 흑인은 내 남동생 딱 한 명뿐이었거든. 그래도 난 정말이지 그 애를 사랑해. 피부색이 달라도 내가 우리 부모님의 딸인 것처럼 그 애 역시 내 동생이거든."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입양이 된 김-미, 백인 부모와 흑인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김-미. 김-미는 내게 말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되면 꼭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양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을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김-미에게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사랑'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어쩌면 사랑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전염성이 강한지도 모르겠다.

이명랑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