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분배의 균형 지켜야(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신당의 성장위주 수정론의 한계
거대여당의 태동과 함께 정부의 경제정책기조를 배분 위주에서 성장 위주로 궤도수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모양이다.
신여권의 구 경제관료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는 이같은 논의의 배경에는 제6공화국에 들어,특히 조순 경제팀 출범이후 정부의 경제정책이 지나치게 배분의 형평과 이를 위한 제도개혁에 치중한 나머지 성장을 위한 배려를 소홀히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에서 활기를 빼앗고 심각한 침체와 위기국면을 초래했다는 불만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그렇게까지된 원인중에는 4당구조의 정치판도 아래서 정부가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느라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다는 측면도 없지않은 만큼 3당통합으로 거대여권이 출범하는 마당에 인기 위주의 정책기조를 바꾸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같은 추론을 사상하더라도 지난 3년간 근로자 임금이 매년 20%정도씩 올라 신흥공업 경쟁국들 사이에서 최고수준에 이르게 되고 임금구조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학력간 격차가 좁혀져 근로자들의 형평ㆍ배분에 대한 불만이 다소나마 누그러진 한편 전체 국가경제가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이 성장론의 대두에 바탕을 제공했다고 할 수도 있다.
배경이야 어쨌든 궤도수정에 대한 논의는 아직 논의의 단계이지 구체적이고 확실한 모습으로 국민앞에 제시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신당이 과연 실제로 성장론을 당론으로 제기할지,그럴 경우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게 될지는 좀더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시점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경제정책의 방향을 바꾸거나 새로 결정하는 것과 같이 국민경제활동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요사안은 사전에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것이 필요하고 우리 나름으로 해두고 싶은 얘기도 없지않기 때문이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87년이래 강도높게 강조되어온 복지향상이나 배분의 형평문제들이 두말할 나위없는 당위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의 지속적 성장 없이는 부의 배분이 아니라 빈곤의 배분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믿으며 이 점에서는 누구도 이론이 없으리라 본다.
그러나 성장 위주의 궤도수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같은 논의가 이미 착수,추진되고 있는 토지공개념이나 금융실명제 등 중요한 제도개혁의 후퇴,혹은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토지공개념이나 금융실명제 등은 그 필요성이 국민적 합의로 굳어진 것이고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가 균형있는 발전을 이룩,선진권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관문이다.
다만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방식대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이루려 하는 자세는 자칫 더 큰 부작용을 일으켜 새 제도의 정착 자체를 어렵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주고 있고 이 점에 대해 우리도 몇차례 주의를 환기한 바 있다.
그런데 신당이 성장론을 제기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동시에 이같은 제도개혁의 당위성보다 부작용을 강조하는 것을 국민들로부터 장차 개혁의지를 의심받게 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제도개혁의 의지만은 결코 흔들려서는 안될 것이며 다만 졸속이 가져올 위험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또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전환한다 해도 거기에는 스스로 한계가 있음을 정책입안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는 이미 과거의 저임체제로는 성장을 지속할 수 없는 단계에 와있고 그같은 여건하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단기적 대응과 동시에 산업구조 조정과 비가격경쟁력의 제고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