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청 6급이 3년간 28억 빼돌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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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최모(33)씨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1998년 철도청에 8급직원으로 특채됐다. 당시 철도청은 경부선 수원~천안 구간 확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최씨는 구간 안에 있는 건물 등을 이전시키며 보상금을 지급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가 다루는 액수는 수백억원대였다.

2년 만에 6급으로 승진한 최씨는 자신이 맡은 업무에 대한 감시가 허술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일단 시설물이 철거되고 그 위로 철로가 놓이면 철거 공사가 실제로 있었는지 확인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전 대상이 되는 시설은 수천 건이나 됐지만 담당자인 최씨가 확인하고 나면 그게 끝이기 때문이다.

최씨의 범죄는 2000년 시작됐다. "그해 5월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하여 갑자기 목돈이 필요했다"는 게 최씨의 주장이다.

처음에는 소액으로 시작했다.

가스배관 업체가 지하에 묻은 가스관을 이전하는 비용으로 1억3000만원을 신청한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예상대로 계장-과장-현장소장의 결재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대금이 입금된 지 한참이 지나도 아무 일이 없자 최씨는 자신감이 생겼다. 두 번째 서류는 3억3700만원, 세 번째 서류는 8억1000만원을 적어냈다.

마지막 범행인 2002년 5월에는 무려 16억원을 신청했다. 모두 무사 통과됐다. 최씨가 횡령한 총액은 28억8260만원이 됐다.

네 번째 횡령이 성공한 직후 최씨는 철도청 내 다른 자리로 인사 발령을 받았다. 철도청이 공사로 전환을 준비 중이던 2003년 최씨는 건설교통부로 특채됐다. 건교부에선 국토지리정보시스템(NGIS) 구축 업무를 담당했다.

최씨와 함께 근무한 건교부 직원들은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그를 평가했다. 완전 범죄가 될 뻔했던 최씨의 범행은 올해 초 감사원이 대형 국책사업에 대한 감사를 시작하면서 꼬리가 잡혔다.

공사 관련 대금 출납내역을 조사하던 감사반원들은 최씨가 맡은 공사 구간의 철거 비용이 다른 구간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최씨가 유흥업소 출입이 잦았고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는 점도 확인했다.

결정적 단서는 지난달 30일 포착됐다. 공사대금 청구 계좌가 최씨 아버지 명의로 돼 있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감사원은 경찰청에 이 같은 사실을 통보하고 정부과천청사에서 최씨의 신병을 확보했다. 최씨의 '대담한 범죄'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감사원 전략감사본부 김충환 전략3팀장은 "28억원이나 횡령했는데 철도청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며 "다른 횡령이나 상납 가능성이 있어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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