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in] "상영관 제한" "시장에 맡겨야" 팽팽한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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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그러나 '괴물'의 흥행 성공을 바라보는 영화계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괴물'이 개봉 초기 전국 스크린의 40%에 가까운 620개를 차지해 다른 영화들의 설 자리를 좁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괴물'을 계기로 가열되고 있는 한국 영화의 독과점 논란을 짚어봤다.

#'스크린 독과점' vs '관객의 선택'

'괴물'은 7월 27일 개봉 첫날부터 각종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며 출발했다. 스크린 수는 종전 최고였던 '태풍'(540개)보다 80개나 많았다. 인터넷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에서 예매율은 95%에 달해 종전 최고였던 '태극기 휘날리며'(91%)를 뛰어넘었다. 개봉 첫날 관객 수는 45만명으로 역다 최다였던 '포세이돈'(35만명)을 가볍게 앞질렀다. 이런 기세를 몰아 개봉 이틀 만에 관객 100만, 9일 만에 500만, 16일 만에 800만, 21일 만에 1000만 돌파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다.

이에 대해 강한섭(서울예대 영화과) 교수는 "'괴물'의 성공 요인은 한마디로 말해 스크린 독과점"이라며 "7~8월 영화 성수기에 스크린을 독과점하고 다른 영화 상영을 제한하면 당연히 이만한 관객이 들어온다"고 주장했다. 대형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를 중심으로 재편된 영화산업 구조가 스크린 독과점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괴물'은 오리온그룹 계열인 쇼박스가 배급한 영화다.

반면 배급사나 극장에선 "관객의 자연스런 선택에 따라 '괴물'의 스크린이 많아진 것이지 독과점은 아니다"라고 맞서고 있다. 김태성 쇼박스 부장은 "극장들이 자체적인 분석을 통해 관객이 많이 들 것으로 판단해 620개라는 스크린을 할애한 것"이라며 "개봉 초기 좌석 점유율이 90%를 넘은 것은 이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이 그만큼 많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독과점 규제해야' vs '시장원리 맡겨야'

'독과점이냐, 아니냐'는 문제부터 양쪽 주장이 팽팽히 맞서다 보니 처방에서도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괴물'이 스크린을 독과점했다고 보는 쪽에선 "강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독과점을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천영세(민노당) 의원은 "멀티플렉스에서 한 영화가 차지할 수 있는 스크린의 비율을 30%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내용으로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도 "국가가 개입하지 않으면 독과점이 계속 심해져 한 개 회사가 전체 시장을 독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배급사와 극장은 "시장경제 원리에 위배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창무 서울시 극장협회장은 "극장들은 지난 50년 동안 끊임없이 규제를 받아오면서도 한국 영화발전을 위해 참고 견뎌 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헌법에 보장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면 헌법 소원을 내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 영화 다양성 확보를 위한 대안

스크린 독과점 논란의 핵심은 결국 영화의 종 다양성 문제다. 산업논리에 따라 배제되는 작은 영화들에 대한 지원과 육성이다. 이를 통해 다양성을 확보하는 게 스크린 수 제한 같은 네거티브 규제책보다 실효성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영화진흥위원회가 실시하는 '다양성 영화 지원제도'의 지속적 확대가 필수 과제로 꼽힌다. 영진위는 올해 '감독 마일리지 제작지원''저예산영화 제작지원''독립영화 DVD 제작.배급지원' 등 10개의 지원책을 편다. 전국 10곳에서 운영되는 예술영화 전용관도 20 ~ 30개로 확대할 예정이다. 그러나 김영진 명지대 교수는 "작은 영화들은 제작지원 못지 않게 유통 창구 마련이 중요하다"며 "전용관이 100개 정도는 돼야 숨통이 트인다"고 말했다. 예전보다 지원규모는 확대됐지만 공적 자금 외에는 기댈 곳이 없는 비주류 영화인들에게는 아직도 '하늘의 별따기'라는 지적도 있다.

CGV인디영화관 같은 멀티플렉스 내 대안상영관의 수적 확대와 내실있는 운영도 과제로 꼽힌다. 이에대해 영화계 일각에서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이런 전용관 사업이 "예술.마이너영화라는 딱지를 붙여 한 구석으로 몰아 오히려 관객과 유리시킨다"(정재형 동국대 교수)는 것이다.

보다 본질적으로 영화산업 수익 구조의 변화를 강조하는 의견도 있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씨는 "스크린 수 제한 등 규제책이 나오면 독과점 자본은 금방 영화시장에서 빠져나가 진공상태가 올 것"이라며 "극장에 올인하는 수익구조가 계속되는 한 업자들이 스크린 확보에 사활을 걸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양성희.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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