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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포' 가보니…조잡한 성인용품 장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음지의 성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성인들이 당당하게 즐길 수 있는 성문화를 조성하겠다."

취지는 그럴듯했다. 하지만 국내 최초의 '성교육 박람회'를 표방하고 나선 '섹스포'는 러브호텔 등에서 봄직한 갖가지 성인용품을 난삽하게 전시해놓은 장터에 불과했다. 성인용품 영세업자들과 정체불명의 단체가 만든 이 박람회는 주최측 대표의 솔직한 고백대로 '힘에 부치는' 시도였다.

"공지한 이벤트는 대부분 취소했습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31일 오전 서울무역전시장(SETEC) 입구는 50여명의 취재진과 입장을 위해 기다리는 인파로 소란스러웠다.

"아니 성인들이 즐길 수 있는 박람회를 한다고 광고를 해댈 때는 언제고 행사당일에 대부분의 이벤트를 취소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박람회 관람을 위해 지방에서까지 찾아온 관객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주최측은 누드모델 촬영대회 등 예고됐던 이벤트는 물론 전시회 내부 취재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입출구 한켠에 손으로 급하게 써놓은 듯한 공지사항이 눈에 띄었다.

"세미 스트립쇼, 트랜스젠더 선발대회, 즉석연인 키스대회, 미스 섹스포 선발대회, 누드 출사대회, 란제리 패션쇼, 누드 사진전, 누드 출사 및 포토 갤러리, 유명 잡지모델 누드 사인회 등 이상의 이벤트는 당사 사정에 의해 취소합니다"

40~50대 남성들로 주를 이룬 관람객들이 이미 산 표의 가격을 깎아달라고 항의하자 직원들은 자신들도 임시로 고용된 것 뿐이라고 책임을 돌렸다.

행사 시작 10분전 취재진에게 나타나 (주)섹스포 대표이사라고 밝힌 박 모씨는 공지사항을 짧게 되풀이해 읽고는 발표를 마무리하려 했다. 기자들의 질문과 관람객들의 항의가 잇다르자 그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능력이 안돼서.. 죄송하게 됐습니다"라고 밝히고는 이내 사라져 버렸다.

행사는 취소되지는 않고 11시가 조금넘은 시각부터 시작됐다. 입장료 15000원을 내자 5000원을 돌려줬다. "15000원이 아니었나요?" 기자가 묻자 "이벤트 취소로 입장료를 내리기로 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럼 잠시 전까지 15000원을 내고 들어간 사람들은 어떻게 하실건가요?" 다시묻자 "저는 시키는 대로 할뿐이에요"라며 주최측에 문의하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전시관 3곳, 식상한 성인용품에 홈쇼핑용 상품은 웬말?
전시관은 3곳 가운데 메인전시관인 1관 입구에 들어서자 처음으로 눈에 띈 플래카드에는 "박람회 기간 중에는 성인용품을 팔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한국성인용품협회 명의로 쓰여 있었다.

입구주변에는 각종 성인용품이 전시돼 있었다. 간혹 노골적인 성행위 관련기구가 이색적으로 전시돼 관람객들의 이목을 끌었지만 대부분은 성인용품점에서 볼 수 있는 제품들이었다. 러브젤과 기능성 콘돔, 자위기구, 러브체어, 성인자판기 상품 등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안쪽으로 들어갈 수록 좌판시장에 가까운 전시와 상품들이 보였다.

한켠에서는 생활용 운동기구와 미용제품, T셔츠 등 의류도 전시해 놓고 있었다. 성교육 박람회라는 취지와는 무관한 홈쇼핑용 상품들도 많았다. 심지어 내비게이션과 휴대폰용 악세서리 등도 있었다.

전신운동기구를 전시해 놓은 이 모씨는 "전시회 참가업체들은 두 부류"라며 "성인용품 협회 회원사 10여개 업체가 주를 이루고 나머지는 모두 영세 물품 판매업자들"이라고 밝혔다. 성인용품을 전시한 회원사들이 주요 부스를 채우고 나머지 공간은 전시회 주제와 관계없는 업자들이 물품판매를 위해 입점했다는 설명이다.

성인용품협회 회원사는 협회본부의 계약사항에 따라 움직이고 나머지 영세업자는 물품 판매총액에 비례한 수수료를 내기로 주최측과 합의했다는 것이다.

내부에서 부스를 관리하던 그는 행사가 진행되는 상황을 자세히 전해받지 못한 눈치였다. 그는 "대부분의 이벤트가 취소됐다"고 귀뜸하자 관람객이 줄어들 것으로 우려하곤 낙심한 표정을 지었다.

◇선정적 의상입은 나레이터 도우미 있지만 "모터쇼 모델이 훨 낫네"
이벤트가 취소됐다고 했지만 성인용품 회원사들이 개별적으로 고용한 도우미들은 미니스커트에 탱크탑 등 다소 선정적인 차림으로 안내를 도왔다.

한쪽 부스에서는 에로영화와 여성의 나신이 입체로 보이는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P사는 입체 동영상 기기를 판매하고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안경같은 상품을 연신 써보던 40대 관람객은 "참내 이게 섹스포야"라며 "차라리 모터쇼 모델들을 보러가는 게 낫겠네"라고 투덜댔다. 성교육 박람회보다는 선정적인 행사들을 좀더 기대하고 전시회를 찾았던 관객들은 대부분 아쉬운 눈빛이었다.

백발의 중년남성 관람객이 전신운동기구와 허리 운동에 좋다는 승마형 운동기구에 올라타 온몸을 떨고 있는 모습은 코미디였다.

2관은 외국 포르노 잡지와 같은 이름의 P사가 전시관 중심부분에만 입점하고 나머지는 빈공간이었다. P사 역시 1관의 여느 입점업체와 다르지 않은 성인용품 약간과 란제리 의류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3관의 경우 창고형 할인의류마트와 다를 바가 없었다. '창고 대 방출'이라는 이름으로 손님을 끌어들이는 이벤트 할인점처럼 매대에 T셔츠 등 성인용 박람회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의류들을 깔아놓고 판매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전시관 중심에는 소파와 책상, 침대 등 생활가구 등도 전시돼 있었다.

성인 비디오 물 기획사에서 주최한 '에로영화 촬영장 체험관'에는 영화 촬영장처럼 꾸민 침대세트와 촬영기구 등이 눈에 띄었다. 회사 관계자는 언론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듯 "에로배우들은 실제 촬영과 달리 기본적인 의상을 입은 상태에서 촬영현장을 선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명분없는 성인용품업자 잔치..성인들 당당히 즐길 박람회 언제쯤?
이번 행사는 기획과정에서부터 선정적인 행사내용이 문제가돼 당초 27일이던 개장일이 31일로 연기되는 등 진통을 겪었다.

(주)섹스포는 △성인들이 당당하게 즐길 수 있는 성을 공론화하고 △사회문제로 부각된 저출산을 극복하며 △행사로 인한 수익금 일부를 전시회 후원단체인 서울특별시 지체장애인 구로회와 한국장애인 문화인쇄협회 등에 기부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지만 애초부터 이같은 그럴싸한 명분을 담을 그릇을 마련하지 못했다.

8개 여성단체가 모인 여성폭력추방 공동행동과 일부 언론이 여성의 상품화와 인권 침해 등을 외치며 행사개최에 반발하자 이에 대해 대응할 명분도 의지도 포기한 상태다.

시작부터 파행이 된 '섹스포' 영세 성인용품 판매업자들이 처음부터 선정적인 홍보로 사회적 관심을 끌어보고자 했던것 아니냐는 비판에 설득력을 더해줬다. [머니투데이]

[관련화보] 반쪽 행사 '2006 서울 섹스 에듀 엑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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