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짜리 BMW로 싸게 출퇴근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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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와 시원하다. 다른 차들은 꽉 막혀 한숨만 쉬고 있는데 내 차는 잘도 달린다. 차량 가격이 웬만한 수입 자동차의 10배도 넘는다. 요금은 지갑 속 카드를 갖다 대기만 하면 된다. 이른 아침부터 자정을 넘긴 시각까지 기사에게 따로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목적지로 향한다….”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이면 함께 타는 사람들이 많아 짜증이 날 때 떠올리면 기분이 나아지는 ‘지하철 생각’이다. 날마다 타고 다니는 익숙한 교통수단이지만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다. 우선 차량 가격이 매우 비싸다는 점이다. 우리가 몸을 싣는 객차 한 량의 가격은 약 11억 원. 10량을 한 묶음으로 편성해 운행하는 서울 지하철 1∼4호선의 경우 110억 원짜리 차량을 몰고 다니는 셈이다.

사람들이 숨을 쉬면서 내뿜는 이산화탄소(CO2) 오염도를 측정하는 계기를 비롯해 배기 팬·보조히터·LCD 정차역 안내 표시기 등을 설치하고, 불이 나더라도 잘 타지 않는 불연재를 쓰고, 소음을 줄이기 위해 차체 철판 두께를 그전 25㎜에서 40㎜로 두껍게 제작하면서 차량 가격이 비싸졌다.

서울 지하철 1∼8호선의 하루평균 이용객은 620만 명(2005년 기준). 해마다 늘던 승객 수가 지난해 처음 약 1% 줄었다. 평일 승객은 별다른 변화가 없는데, 주5일 근무제가 확대되면서 토요일 승객이 감소해서다. 노선별로 보면 17개 환승역을 통해 1∼8호선과 모두 연결되는 순환노선 2호선이 하루평균 191만 명으로 가장 많다.

그 다음으로 4호선(84만 명), 5호선(83만 명), 7호선(80만 명), 3호선(71만 명) 순이다. 여기에 철도공사 차량이 운행하는 1호선 전철 및 용산∼덕소 구간, 분당선과 인천 지하철 1호선 등을 합친 전체 수도권 전철(지하철) 이용 승객은 868만 명에 이른다.

서울 지하철 1∼8호선 중 운행 개시일로 보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1974년 광복절에 개통한 1호선이 맏형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누적 운행거리로는 10년 늦은 1984년 5월 개통한 2호선이 으뜸이다. 기본적으로 노선(60.2㎞)이 길기 때문인데, 지난 6월5일 누적 주행거리 2억㎞를 돌파했다. 이는 지구를 5,000바퀴, 지구에서 달까지 260번 왕복, 서울∼부산 사이를 25만여 번 왔다갔다한 것과 같은 대기록이다.

당연히 승객이 많은 역도 2호선 차지다. 1∼8호선 전체 265개 역 가운데 강남(하루평균 11.8만 명)·삼성(9.9만 명)·잠실(9.3만 명)·신림역(8.8만 명) 등 승객 상위 4개 역이 모두 2호선에 집중돼 있다. 하루 운송료 수입이 5,000만 원을 넘는 지하철역은 강남·삼성·잠실역 등 세 곳이다.

이를 합친 지하철 1∼4호선의 하루평균 운송수입은 19억5,700만 원. 승객들은 10명 중 7명(74.2%)이 교통카드로 요금을 내고 나머지는 보통권(9.2%)이나 정기권(5.3%), 노인과 장애인 등 무임 승객(10.9%)이다.

8월15일 32주년을 맞는 서울 지하철(수도권 전철 제외)은 연간 수송 승객(22억 명)으로 볼 때 모스크바·도쿄(東京)에 이어 3위, 전체 연장(287㎞)으로는 런던·뉴욕·도쿄에 이어 4위다.

이런 점들을 알고 나서인가? 샐러리맨들 사이에 “나, 오늘도 BMW로 출근했어요”라는 말이 나돈다. 여기서 B는 Bus(버스), M은 Metro(지하철), W는 Walking(걷기)을 가리킨다. 집에서 시내버스나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내려 갈아탄 다음 회사 근처 역에서 내려 걸어서 출근하는 방식이다. 그러려면 지갑 속 교통카드는 기본이요, 카드를 갖다 대면 나오는 ‘환승입니다’라는 말 정도는 알아야 한다.

BMW는 복잡한 대도시에서의 교통수단일 뿐만 아니라 고유가·웰빙 시대에 소비절약과 함께 건강을 증진하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하루에 1만 보는 걷자며 만보기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 이들도 있는데, BMW로 출퇴근하면 적어도 몇천 보는 먹고 들어가니 말이다. 더욱이 이르면 8월부터 자전거를 끌고 지하철을 탈 수 있도록 한다니, 새로운 ‘B(Bicycle)MW족’을 볼 날도 머지않았다.

양재찬_월간중앙 편집위원(jay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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