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당한 자녀, 섣부른 위로는 되레 역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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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대학생의 절반이 우울증세를 갖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그중에서도 사귀던 여학생 혹은 남학생과 헤어진 후에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장수경 임상심리학자는 “실연은 누구나 경험하기 때문에 당사자는 물론 부모나 주변친구들도 이것이 우울증세로 발전하고 있는 것을 몰라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며 단순히 실연으로 인한 ‘상심’인지 ‘마음의 병’인지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한인 부모들은 “공부하는 학생이 무슨 연애냐”며 문제자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때문에 자녀들의 우울증세를 악화시킨다며 경우에 따라서는 평생 우울증환자로 살아가야 한다며 조짐을 알아 필요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신속히 받을 것을 권했다.

* 케이스= 대학 2년생의 여학생은 동부의 대학으로 입학했다. 생전 처음 집을 떠난데서 오는 향수병과 외로움 여기에 학업과 LA와 달리 4계절 변화가 뚜렷한 기후 등이 스트레스가 된다. 그래서 입학 후부터 계속 茶셀?여드름과 같은 것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고운 피부에 남다른 자신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피부 때문에 고민을 많이하게 됐다. 그래서 남학생 앞에서도 자신감이 없었는데 2학년 초에 한 남학생이 호감을 보였다.

“얼굴이 이런데도 나를 좋다고 하는구나”하며 정신없이 남학생에게 빠져들게 되었는데 어느날 다른 여학생과 이메일하는 내용을 보게 됐고 크게 낙담, 결국 헤어졌다. 그후부터는 사람들에게 얼굴 보이기가 겁났고 교실에 들어갈 용기가 없어졌다. 기숙사 방안에만 틀어박혔고 결국 학기를 포기, 부모에게 돌아갔지만 부모는 오히려 자신보다 더 화를 내며 “하라는 공부는 않고 그까짓 남자때문에 학교까지 포기했냐?”며 몰아 세웠다. 점점 자신감이 상실, 의욕상실이 됐고 식사도 않고 일체 외부출입을 하지 않고 있다.

대학 3년생 남학생은 대학 1년때부터 사귄 미국인 여학생이 “더이상 좋아하지 않는다”며 떠나갔다. 그후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비웃는 것 같았고 그들이 웃으면 꼭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클래스에 앉아있으면 교수까지 자신을 ‘응시’하고 웃는 것 같아 식은땀이 흘렀다. 수업가기 두려워 하루종일 컴퓨터앞에만 앉아있게 됐고 결국 학업중단을 하고 집에 왔다. 증세는 더심해져 식사도 않고 하루 종일 게임을 하고 친구도 만나지않고 외출도 않는다. 가족들과도 부딪치지 않으려 방문을 잠가놓고 있다.

* 헤어진 후 초기에 나타나는 우울증세= 우선 입맛이 떨어져 식사를 못하고 잠을 못잔다. 이것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면 우울증세로 보아야 한다. 체중이 현저히 줄어든다면 상태가 심한 것이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또 혼자 있으려 한다. 따라서 친구를 피해 기숙사 방에 있거나 어둡고 조용한 곳을 찾아 혼자 숨어 있고 싶어한다. 이같은 심리는 우울증세의 하나로 혼자서 자신의 우적한 기분에 한껏 잠기길 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출도 하지 않으려 한다. 우울증환자들의 특징이 방구석에서 틀어박혀 있으려하는 것인데 이들은 사실은 자신의 울적한 기분을 은밀히 즐기는 심리를 갖고 있기때문이다.

실연한 사람들은 즐거웠던 때를 계속 반복해서 회상하면서 그 슬픔을 혼자서 즐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때 누군가 분위기를 전환시켜 더이상 잠겨있지 않도록 해주지 않으면 우울증환자처럼 계속 그 ‘감정 사이클’에 빠져들어 나오기가 힘들어진다.

* 치료= 사실은 자녀들은 실연한 후 가장 먼저 부모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한다. 그러나 대부분 한인부모들은 말을 꺼내면 자신이 더 마음 아프기 때문에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가 더 흥분하여 ”그런 나쁜 X 는 잘 헤어졌다. 잊어버려라“고 하는데 이것은 전혀 도움이 안된다. 자녀는 마음속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대상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치료를 기술적으로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자신감을 갖도록 유도한다. 실연당한 학생들이 가장 두려운 것은 사실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는 것보다 “다시는 사랑할 수 없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뭔가 부족하기때문에 헤어지게 됐다는 생각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 ‘왜 헤어지게 됐나’ 하는 이유를 객관적으로 찾아낼 수 있게 도와준다. 상대방의 잘못이라면 더이상 연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이라면 고쳐서 다음에 만난 사람과는 잘되도록 해주기 위함이다.

부모가 사연 들어줘야

* 전문가 조언= 한인부모 중에는 이성교제는 대학교에 들어간 다음에 하라고 한다. 그래서 대학교때 실연을 할 경우 경험이 없어 혼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특히 한인대학생들이 우울증에 더 잘 빠진다. 오히려 부모곁에 있을 때 이성친구도 사귀고 또 헤어지는 경험도 ‘부모와 함께 있을 때’ 경험하게 하는 것이 좋다. 또 자녀가 실연했을 때 헤어진 사람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저 자녀와 같은 슬픔마음으로 ‘잘 들어 줄 것’을 충고한다. 자녀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자녀의 추억을 존중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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