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씨의 선택/권영빈(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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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의 가족제도를 일본과 비교해 보면 친자와 양자에 대한 개념이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으로 나타난다. 낳은 정 기른 정 가릴것 없다고 입으로는 큰 소리 치지만 다 큰 자식이라도 친자가 아니면 헌신짝 버리듯 하고 친자 확인 소송을 벌여 생판 모르는 아이도 한 핏줄이라는 판결이 나면 금이야 옥이야 끌어 안는다.
설령 대를 이을 핏줄이 없어 양자를 데려온다 해도 양자의 선택기준이 얼마만큼 짙게 한핏줄을 나누고 있느냐에 따라 가장 가까운 인척중에서 택하게 마련이다. 타성불양의 순혈주의가 가족 구성의 기본이 된다.
그러나 서양에선 종교의식이긴 하지만 대부제가 보편화되어 있어 의제적 친자관계가 형성되고 있고 때로는 진짜 부자관계를 능가하는 친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기도 하며 재산의 상속도 가능하다.
특히 일본의 경우 양자제도는 매우 오랜 가족적 관습으로 광범하게 실시되면서 막부시절부터 오늘날까지 무사집단에서,기업내부에서,또는 뒷골목의 주먹사회에 이르기까지 친분(오야붕)과 자분(고붕)의 의제적 친자관계가 자연스레 통용되고 있다. 혈연의 정통성보다는 충성과 계약의 조건으로 맺어지는 일본의 친자관계는 우리의 가족의식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우리의 가족제도가 혈연의 정통성을 중시하는 폐쇄적 종적 관계라면 일본은 의제적 친자관계를 통해 횡적 유대를 강화할 수 있는 개방적 가족의식을 지니고 있다.
3당통합ㆍ거대신당 출현이라는 충격적 발표가 있은지 나흘째,흩어져있던 가족들이 조상을 기리며 핏줄의 연대의식으로 함께 자리한 설날 사랑방의 화제는 역시 3당통합에 쏠리게 마련이고 합당에 대한 비판적 시각 또한 핏줄 정통성에 근거한 가족의식임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같은 뿌리를 지닌 민정ㆍ공화의 합당이라면 충격받을 일도 없고 비판할 까닭도 없었을 것이다. 군부통치에 맞서 문민정치를 내걸고 30년 정통야당임을 그토록 주장해왔던 민주당의 김영삼총재가 합당의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는 현실이 처음엔 충격으로,나중엔 배신감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핏줄의 연고는 말할 나위 없고 오히려 오랫동안 적대관계를 유지해왔던 세도가에 후사가 없음을 기화로 양자가 되기를 자청했다는 사실에 한때나마 그를 아끼고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배신감과 모멸감을 안겨 주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세도가가 어떤 가문이었던가. 금권과 폭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압제와 권위로 대표되는 선대의 얼룩진 죄업으로 이룩된 가문이 아니었던가. 더욱이 선대의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는 5공청산 작업이 형식적으로나마 마무리짓기에 앞서 철저한 비밀주의와 전술적 책략으로 청산과 「입양작업」을 동시에 추진했다는 사실이 배신감을 넘어선 분노로까지 발전한다.
김영삼씨가 내세우는 구국적 차원의 명분,『오로지 국민앞에 봉사한다는 일념으로 아무 조건없이 뭉쳤다』는 합당의 논리를 인정한다 해도 이 논리가 우리의 의식저변에 흐르는 순혈주의적 정통성을 능가 할 수는 없다.
설령 합당의 논리가 소리를 버린 대의의 결합이었다 할지라도 그 대의의 추구자여야 할 김영삼씨의 존재와 역할이 얼마동안 지속될 수 있고 얼마만큼 강화될 수 있느냐는 의혹이 짙게 깔려있다. 대를 이을 마땅한 인물이 없는 여권의 사정때문에 뿌리가 다른 타성받이가 당장은 필요한 존재로 추앙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세월동안 새로운 후사가 태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고,또 개발독재의 황금시절 한가운데서 테크너크랫의 탁월한 기술을 연마했을 공화당 세력이 복수 입양으로 합가된 형편에서 타성받이의 위치는 세월이 갈수록 약화되고 위태로워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이점이 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씨를 지지했던 많은 중산층과 지식인 그룹이 아쉬워하고 우려하는 마지막 안타까움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빙회불상용의 평민당과는 합쳐질 수 없고 제2야당의 고달픈 신세를 2년씩이나 감수했다면 무언가 새출구를 물색해야한다는 자구의 노력을 이해못할 바가 아니다.
여소야대의 정국 불안이 사회경제적 갈등을 일으키고 소모적 정국 운영이 국정의 중심을 잃게했다는 지난 2년간의 불만이 3당통합을 계기로 해 해소될 수 있다는 희망적 관측을 결코 배제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희망적 관측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당사자인 김영삼씨가 합가의 정통성을 잃고 있고 합가의 과정이 자청입당의 타성받이라는 점에서 합당의 한계를 분명히 느끼는 것이다.
외곬 30년의 길을 버리고 그의 마지막 인생을 건 도박이라 할 합당 선택의 중대 결정을 하기까지에는 김씨 나름대로의 심모원려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5공청산을 마무리 지은 지금까지도 민주와 비민주와의 소모적 대결을 계속해야만 하느냐,선대의 부도덕성을 씻고 새 시대 큰 정치를 해보자는 세도가에 입문해서 후사없는 대를 이어 자신이 쌓아온 정치경륜을 마음껏 펼쳐보자는 웅지도 담겨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과연 그 희망,그 웅지를 펼 수 있을만큼 우리의 의식구조가 횡적 유대를 포용할 수 있는 관용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애써 영입한 양자를 타성받이로 내몰지 않고 그의 개혁적 웅지를 북돋우고 밀어주는 쪽으로 합당가족들이 밀어줄 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의 숙제로 남긴 채 두고 볼 일이다.
정치가란 사라지긴 쉬워도 새로 태어나기란 어려운 법이다. 전체국민의 28% 지지를 받았던 하자없는 정치가가 순혈주의의 정통성에 의해 일시에 매도되고 타성받이의 외로운 신세로 전락된다면 그 또한 슬픈 정치현실의 되풀이가 아니겠는가.
뛰어난 정치감각과 탁월한 지도력의 소유자로 꼽혀온 김영삼씨의 마지막 선택이 성공적으로 끝나기 위해선 거대 신당속의 안주가 아니라 안정속의 개혁을 역동성있게 추진하는 개혁의 실천 세력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바로 이점이 한때 그를 아끼고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걸고 있는 한가닥 희망이기도 하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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