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 노렸던 5공세력들“침울”/거대여당 출현…「장외인사」들도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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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또 소외 당했다”… 곤혹스런 백담사/“생각도 못한일” 권익현ㆍ정호용ㆍ이종찬씨 난감/고흥문ㆍ이중재씨 등은 야권통합쪽에 더 큰 관심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전격합당에 가장 소외됐거나 불이익을 당한 사람은 뭐니뭐니 해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또 전씨와 함께 권익현ㆍ정호용ㆍ김복동씨 등 노대통령의 육사11기 동기생들도 적지않은 타격을 받았고 민정당 내에서는 이종찬 전 사무총장이 허를 찔린 셈이 됐다.
이들은 대체로 노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밝힌 『어떤 특정야당과 제휴를 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말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신당이 호남 고립화라는 비난을 벗어나기 위해 호남인사를 발탁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이중재씨등 호남출신의 구 정객들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누구의 장난이다”
○…구랍 31일 국회증언을 마치고 하산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백담사측은 『또한번 당했다』는 곤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백담사측은 5공문제만 그럭저럭 넘기면 노대통령이 여권의 전열을 정비,정면돌파하지 않겠는냐는 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
사실 증언 이후 백담사에는 많은 여권인사들이 찾아왔고 전씨 역시 노대통령에게 애써 좋은 감정을 표시하는 등 하산대비책이 조용히 모색되었다. 전씨는 생일을 전후해 찾아온 과거직계들과 양주를 3병이나 마시며 앞날을 얘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1ㆍ22합당 조치후 백담사는 눈에 띄게 조용하고 전씨측은 말을 잃은 듯한 분위기.
한 측근은 때맞춰 전씨의 외유ㆍ귀경설이 보도되자 대뜸 『누구의 장난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다』며 최근 「전 전대통령이 건강체크차 닷새동안 서울을 방문했다」는 소문도 물먹이기 작전의 일환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전씨의 정치적 재기를 은근히 노린 5공세력들은 대부분 원외에서 신당돌풍에 「개밥의 도토리」 신세가 된 듯한 느낌을 갖고있다.
○정의원 재출마 별러
○…민정당 원외위원장들의 중망속에 재기를 준비해온 권익현 전 대표위원은 전씨 보다는 훨씬 담담하게 상황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권씨는 『역사적인 일을 어찌 개인적인 일과 연관시키겠느냐』며 『관망하겠다』고 했지만 내심은 그리 편치않다.
그는 민정당의 유화제스처에 화답,지난 15일 민정당 창당9주년 기념식에 처음 얼굴을 비쳤고 또 지난 18일에는 노대통령과 오찬을 나누기도 했다. 이같은 그의 상황판단이 많은 원외위원장들에게 기대를 주었고 그 때문에 통합조치에 실망 또한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권씨가 이끄는 민우회 회원 등 원외인사들은 노대통령의 질주를 『너무 기습적이다. 결국 자신의 목을 죄는 행동』이라고 보고있다.
지난 연말 당직마저 사퇴한 정호용 전 의원은 자신의 결정이 결코 살신성인이 아니었음을 절감,보궐선거 출마를 적극 검토중이다.
그의 측근들은 『민정당이 없어지는 판에 뭣을 망설이겠느냐』고 출마를 권유하고 있다. 의원직 사퇴 당시 본인이 원한다면 당공천까지 보장한다는 노대통령과의 밀약까지 있었으니 하등 개의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정씨 자신은 구정 전후 3일간 서울에 와 공기를 살피고 다시 지방으로 잠적했는데 그가 재출마할 경우 TK사단의 내부가 복잡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신당추진세력들 사이에 나오고 있다.
노대통령의 처남이면서 차기 대권을 노린 김복동씨 역시 난감해 하기는 마찬가지.
지난 연말 자신을 미화하는 괴책자가 나돈 후 안기부에 핵심참모 6명이 불려가 곤욕을 치른 후 잔뜩 위축되어온 김씨는 통합신당이 발표되자 외부에 노출되는 활동을 가급적 삼가고 있다.
최근 노대통령의 김씨에 대한 견제는 눈에 띄게 강화되어 당국이 내놓고 김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고 김씨가 작년 미국에서 받은 박사학위에 대해서도 여러말이 나오는 등 김씨의 행동을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소문이 무성하다.
TK에 밀려 대중적 지지쪽으로 정치적 기반을 닦던 이종찬 의원도 쇼크를 받기는 마찬가지.
내각책임제로 개헌되면 원내중심의 정치가 이뤄질 것이고 그 이전에 YSㆍJP가 들어앉은 마당에 대중적 지지를 논할 계제도 못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늦었지만 원내로 눈길을 돌려 세규합에 나서고 있는데,주로 SK(서울ㆍ경기)를 비롯한 중부출신과 반TK그룹의 포섭에 나서고 있다.
이밖에 TK중 정호용의원 지지서명파와 5공인사들에게도 손을 뻗치고 있다는 후문.
하지만 대세를 간파한 4선의원까지 박철언 정무장관 진영으로 옮기는 바람에 여의치 않다는 얘기. 심지어 이의원과 가깝다는 중진 L의원까지 박장관 줄에 섰다는 소문이다.
○유한열 의원 참여설
○…한편 신당으로부터 영입교섭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던 고흥문 전 국회부의장은 3당합당에 대해 부정적 시각.
사돈이 경영하는 청주방직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매일 이 회사에 출근하고 있는 고씨는 청와대 비서실측으로부터 지난 22일 이후 3당합당에 대해 「설명」 해주겠다는 전갈을 받았으나 본인이 거부했다고 소개.
고씨는 『보수연합이라고 하는데 특정지역을 배제하고 무슨 연합이냐』며 『명분과 정통성을 떠나서 참여한다면 5공 때도 참여할 수 있었다』고 신당에 참여할 뜻이 없음을 시사.
고씨는 대신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가 2선후퇴하고 진정한 야권통합이 이뤄지면 그곳에 참여할 뜻이 있다』고 피력.
신당이 영입하려고 하는 이중재 평민당 전 수석부총재는 현재까지 신당참여 보다는 야권통합에 더 관심.
이씨는 『평민당이 변화해야 거대 여당에 대항할 중도민주세력의 규합이 가능하다』고 전제,『김대중 총재의 2선후퇴 없이는 비호남권 야당지지세력이 평민당으로 모일 수 없다』고 김총재의 2선후퇴 결단을 강조.
지난 23일 민주당 정무회의에서 『혼자라도 남겠다』며 3당합당 참여를 거부했던 김상현 부총재는 29일 「민주당 사수 단합대회」를 주도하는 등 전통야당의 여당화를 막는데 안간힘.
야권통합운동의 배후에 있었던 유한열 의원(무소속)은 신당쪽으로부터 참여타진을 받고 일단 긍정적 자세.
유의원은 『내각제와 보수대연합은 원래 내 지론이기도 하다』고 밝혀 신당참여의사를 간접적으로 시사하면서도 『합당과정에 문제점이 많아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유보적 태도.<김규진ㆍ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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