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세질까 약해질까(거대 신당: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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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당무 손뗀다”에 갖가지 해석/민정계파 장악하면 불리할 것 없어
민정당이 민주·공화당과 합당하기로 하자 가장 주목되는 대목의 하나가 노태우 대통령의 위상이다.
새로운 민자당(가칭)이 창당될 때까지는 김영삼·김종필 두 김씨와 함께 3인 공동대표로 운영해 나가기로 했고,그 후에는 당총재직에 계속 있기로 했지만 사실상 당무는 손떼고 정부일에만 전념한다고 해서 그 의미에 대해 해석이 구구하다.
민주·공화당 쪽에서 말하듯 민자당이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의 지도 아래 단일체제로 운영된다면 노 대통령은 총재직에 있다 하더라도 사실상 민자당 당적만 보유할 뿐 실제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엇갈리는 향후거취
이 때문에 민정당이 굳이 확대간부회의까지 열어 『노 총재가 당을 관장한다』고 발표까지 했고 노 대통령이 5인 최고위원의 대표위원을 맡는다는 소문도 나와 당 지도체제를 둘러싸고 잡음이 있는 듯이 소리가 나기도 했다.
때문에 노 대통령의 향후거취를 두고도 몇 가지 추측이 엇갈려 나오고 있다.
그 하나는 노 대통령이 완전히 당무에 초연한 입장에 선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김영삼 총재의 민주당까지 싸안음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확보했고 따라서 사후보장도 됐기 때문에 나머지 임기만 채우고는 훌훌 떠난다는 것이다.
그는 거대여당에 의해 6·29를 이루고 보수대합동을 달성한 민주적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데 만족할 것이라는 관점이다.
이런 견해와 전혀 반대되는 추측은 노 대통령이 앞으로 내각제로 개헌한 후에도 민자당에 적극 개입하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노 대통령이 내각제개헌 후 수상자리를 다툰다든가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민자당에 남아 구민정계 대파벌 원로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행사한다는 것이다.
내각제개헌으로 5년단임조항이 효력이 없어지면 노 대통령이 조정역으로서 개헌 직후 당분간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지 않느냐는 전혀 근거없는 추측도 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정치적 위치는 앞으로 민자당내의 파벌 재편성과정과 1노2김의 역할분담에 따라 변모하게 된다.
1노2김간의 밀약은 노 대통령의 임기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93년 2월25일 임기가 끝날 때까지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최대한 행사할 수 있게 해준다는 뜻이다.
내각책임제 개헌을 13대 국회 임기중에 하더라도 92년 5월 임기가 거의 끝날 때까지 늦춘다는 것이고 그 후로도 개헌안의 발효시기를 93년 2월25일 이후로 하면 레임덕(임기말 통치권 무력화현상) 신세는 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정계개편 추진과정을 보면 노 대통령이나 민정당이 원내의석의 절대다수나 확보하자는 생각만이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청와대나 정계개편의 핵심층 사이에는 민정·민주·공화 3당이 진짜 하나의 당으로 용해해 들어가는 화학적 변화의 과정에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눈치다.
○여당 YS 힘엔 한계
민주당의 김영삼 총재 계보가 투쟁일변도시대의 의리로 뭉쳐 결속력은 있지만 정책을 창출해내고 국정을 직접 경영하는 입장에 들어서면 쉬 무력해지리라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내각에 참여하든,당직을 배분받든 간에 YS계는 새로운 이해관계 속에서 재편과정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방대한 민정당조직과 민주·공화의 두 야당조직이 접목되고 지역에서도 여당의 입장에 서게 되면 전체적인 성향이 결국 여성화되고 만다는 분석이다.
앞으로 당직체계도 문제다. 비록 김영삼씨가 대표최고위원이 되더라도 당무의 전권을 행사할 위치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김영삼 총재의 개인적 인기는 그의 투쟁적 야성을 근거로 한 것이었으며 여당의 대표최고위원으로서의 김 총재의 정치적 역할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파워게임 이미 시작
더군다나 여당은 항상 정부 쪽과 당정협의를 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만큼 당의 대표에게도 그 나름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동안 우리 여당의 경험이었다.
따라서 민정당 출신들이 얼마만큼 계보로서 결속하느냐가 1노2김의 역학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노 대통령이 대통령과 총재의 권한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민정당 출신들을 그의 우산 아래 끌어모은다면 노 대통령은 단순한 1파의 보스일 뿐아니라 차기 대권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는 점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1노2김 사이에 정치적 묵계가 있다손 치더라도 변화무쌍한 우리 정치의 흐름 속에 앞길을 단언할 수는 없다.
3개 정당 모두 그러한 점을 인식하고 당내 세력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막후흥정이 한창이다. 내부의 파워게임은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노 대통령의 직계세력이 누구를 후계로 지목하고 결속하느냐가 중요하며 이런 점에서 박철언 정무장관의 거취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항상 노 대통령의 임기수행을 뒷받침하고 사후보장을 역설해왔으며 그 구도의 일단을 정계개편으로 성취했다고 한다. 따라서 그의 구도대로 앞으로의 정계구도가 짜여간다면 노 대통령의 역할이 당분간 축소되는 일은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김영삼·김종필 두 총재가 양측에 서 있는 가운데서 노 대통령이 합당선언을 발표하는 장면은 여러 가지 해석을 낳았다.
그것은 권력의 3분현상으로 비치기도 했고 초월적인 인상을 주기도 했다.
신당의 계보가 빨리 정비되어 두 김씨 중 한 사람이 의외로 큰 계보를 거느리게 될 경우 권력의 누수현상이 심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로는 두 김씨가 차기 대권을 위해 일단 머리를 숙이고 들어왔고 대통령중심제하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현직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볼 때 상황이 노 대통령 자신에게 불리하게는 돌아갈 것 같지 않다.<문창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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