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제대로 망가져…그래서, 내가 '개그 퀸카' 됐잖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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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퀸카 만들기 대작전 챕터 1! 각선미!" "우린 각선미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미를 가지고 있어. (어깨를 출렁이며) 곡선미! (헤벌레 웃으며) 백치미!"

SBS-TV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인기 코너인 '퀸카 만들기 대작전'에 출연하는 개그우먼 김현정(25.(右))과 정주리(22.(左)). '개그우먼 전성시대'를 이끄는 선두주자들이다. '퀸카…'은 '웃찾사'에서 여자 출연자만으로 꾸려가는 유일한 코너다. 왈가닥스러운 김현정과 정주리가 '공주과'교육생에게 되레 롱다리.눈물 등이 퀸카가 되기 필수 항목이라며 궤변을 늘어놓는다는 내용. 1970년대를 연상시키는 나팔바지와 머리끈 패션도 눈길을 끌지만 "인기 많으려면 나처럼 엉덩이에 보톡스를 맞아야 돼"라는 등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대사가 방청객들의 배꼽을 잡게 만든다. '퀸카…'가 여느 코너와 다르게 5개월째 '롱런'한 것은 SBS 개그맨 공채 8기 동기인 김현정.정주리의 찰떡궁합 때문.

"말 마세요. 공채라도 저희가 일이 없어 붕 떠있었거든요.(개그맨과 모 소속사의 갈등 때문에 공채 8기들이 각각 다른 소속사로 뿔뿔이 흩어졌단다) 강성범 선배와 함께 '따라와'라는 코너로 제가 먼저 얼굴을 알렸죠. 그때 언니한테 미안했어요."(정주리)

"너무 초조해서인지 주리가 '언니 밥 먹었어?'하면 '나 방송 안 한다고 무시하나'하는 생각부터 들더라고요. 자격지심이었지요. 그래도 주리는 '따라와' 연습하기도 바쁠 텐데 내가 불러내면 새벽이라도 나와서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안무 연습하고 대사 맞춰줬어요. 너무 고마웠죠."(김현정)

이런 우정과 '새벽 투혼' 덕분에 "그래서, 내가 왔잖아~"같은 유행어가 터져 나왔다.

서울예대 극작과 출신(휴학 중)인 김현정은 개그맨 심현섭 등을 배출한 서울예대 동아리 '개그클럽'의 멤버. "개그 짜는 데는 자신이 있었는데 진짜 프로가 되고 나니 조금씩 부족하다고 퇴짜를 맞는 거예요."(김현정)

그러다 자신들의 소속사 대표이자 컬투의 멤버인 정찬우의 도움으로 '퀸카'라는 소재를 찾아냈고, 그에 어울리는 의상.유행어.노래.춤을 차례대로 구성하기 시작했다.

"실물을 보고 다들 예쁘다고 놀란다니까요"라며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이들. 실제로 20대 꽃다운 나이인데 방송에서는 일부러 콧구멍을 크게 만들고 다리도 번쩍 들어올리는 민망한 포즈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망가짐' 덕분에 재미있다는 반응도 많으니 멈출 수가 없단다. 월요일과 금요일 빼고는 매일 있는 무대 공연에서 대사와 설정도 바꿔 보고 애드립도 하면서 매회 다른 내용의 '퀸카…'를 선보인다고. "예상도 못했던 대목에서 웃음이 터져나오면 저희도 깜짝 놀라요"라며 공연의 묘미를 전한다.

부모님은 딸이 피부미용과를 나와 취업하기만을 바랐다는 정주리, 엄마가 "네가 개그도 하느냐?"며 반문했다는 김현정. 이제는 양쪽 집 모두 딸들의 기사만 보면 오려놓기 바쁘다. "다른 유명 연예인 엄마들이 한다는 기사 스크랩을 우리 엄마들이 하고 있더라고요. '개그우먼 전성시대'란 말도 우리 엄마들이 만들어낸 것 같아요. 호호."

모든 일을 미리 해둬야 직성이 풀리는 김현정과 별명이 '노인네'일 정도로 낙천적인 정주리. 성격이 달라 부족한 점을 서로 보완해줘 오히려 좋단다. "다음 작품도 같이 해보려고요. 고부간의 갈등을 다뤄볼까 하는데 어떨까요? 제목은 '올가미'쯤으로 하려는데…"라며 슬쩍 향후 계획도 밝혔다.

"아 참, 공통점이 있네요. 엄마들이 두 분 다 맏며느리예요. 그래서 고부갈등 코미디를 생각해 냈나? 앗! 엄마 이야기까지 개그 소재로 쓴다는 걸 알면 큰일인데."

연방 '만담'처럼 펼쳐지는 대화가 '퀸카…'의 한 대목을 보여주는 듯 그들의 생활은 온통 개그 생각으로만 차 있었다.

글=홍수현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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