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 고급차 자동변속기 '승단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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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자동차 업체들이 최근 자동변속기의 단수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단수가 높아지면 연비와 승차감, 최고 속도가 향상되기 때문이다. 자동변속기는 엔진과 더불어 자동차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 현대차 등 국내 업체들은 1990년대 부품 국산화에 온힘을 기울일 때도 자동변속기 개발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국산차는 4단에서 최근 고급차를 중심으로 5단을 장착하는 추세다. 수입차는 대부분 5, 6단이지만 지난해 하반기 7단이 나왔다. 자동차 평론가인 황순하(GE코리아 상무)씨는 "자동변속기의 단수가 많아지면 기어비가 커져 동력 손실을 줄일 수 있어 연비가 좋아지고 변속 충격이 적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변속기 단수를 높이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수입차 전문지 스트라다의 김기범 기자는 "넘치는 엔진의 힘을 단수가 많은 자동변속기가 제대로 받쳐주지 못할 경우 변속기에 무리가 가고 승차감도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엔진 출력이 500마력 이상 나오는 수퍼카급에는 아직도 4단이나 5단을 쓰고 있다.

변속기 단수를 높이는 데는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다. 기어 단수가 많아지면 중량과 생산 원가가 올라간다. 중량은 연비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단수를 높이더라도 변속기 중량을 너무 늘려선 안 된다. 또 엔진의 힘을 충분히 소화하기 위해선 내구성이 좋아야 하고 잦은 변속에 따른 충격도 줄여야 한다.

넘치는 엔진 힘 때문에 변속기 단수를 쉽게 늘리지 못하는 업체도 있다. BMW다. 이 회사는 강력한 힘을 내는 엔진 때문에 변속기 단수를 올리는 데 어려움이 있어 최고급 차인 7시리즈에도 아직 6단을 사용하고 있다. 엔진 힘이 좋아 6단으로도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엔진 기술이 뛰어난 혼다 역시 5단에 그치고 있다. 엔진의 힘을 받쳐줄 만한 변속기 개발이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싼타페.그랜저.쏘나타3.3.에쿠스에 5단 자동변속기를 사용한다. 기아차 오피러스.쏘렌토도 5단이다. GM대우는 올 초 출시한 중형차 토스카2.0에 일본 아이신제 5단 자동변속기를 달아 재미를 봤다. 경쟁차인 쏘나타.로체.SM5의 4단보다 변속 충격이 적고 연비(10.8㎞/ℓ)가 상대적으로 높아 인기를 끌었다.

자동변속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회사는 몇 안된다. 벤츠.혼다.도요타(계열사 아이신) 정도다. 국내 업체로는 현대차가 자동변속기를 개발한다. 나머지는 대부분 전문 회사 제품을 사다가 쓴다.

전문가들은 자동변속기 개발에 가장 앞선 회사로 벤츠를 꼽는다. 벤츠코리아는 지난해 출시한 스포츠쿠페 CLS350에 국내 처음으로 7단 자동변속기를 달았다. 벤츠는 현재 대부분 차종에 7단을 달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최고급차인 S600에는 오히려 5단을 사용한다. 벤츠코리아 관계자는 "S600에 달린 V12 엔진은 최고 517마력을 내 5단으로도 충분히 가속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아우디는 현재 6단을 사용하지만 최근 7단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도요타코리아는 올 연말께 출시할 대형차 LS460에 세계 처음으로 8단 자동변속기를 달았다. 현대차는 2009년 출시할 고급 대형차에는 6단 자동변속기를 달기로 했다. 2000년부터는 핸들에 자동변속기를 조작할 수 있는 버튼 또는 페달(패들 시프트)이 달려 나오고 있다. 벤츠.BMW.아우디.포르셰 등의 스포츠 세단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 페달을 밀거나 당길 때마다 기어 단수가 내려가거나 올라간다.

이처럼 핸들에 변속기 기능을 하는 장치가 생긴 것은 자동차 레이싱인 포뮬러1(F1)의 영향이다. 보다 빠른 기어 변속을 위해서다. 이런 장치를 추가하려면 500만~1000만원 정도 든다.

김태진.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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