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생도 고3처럼 대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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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대입 탈락 생들이 대거 재수의 길로 뛰어들고 있다.
변변한 대학 졸업장 없이는 제대로 사람대접 받기도 어려운 현 사회구조와 10년 공부가 단 하루의 시험만으로 평가되는 현 입시제도 아래에서 낙방 생들이 1년 더 공부해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재도전 하겠다는 것이 결코 나쁠리는 없다.
그러나 최근 입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재수생 강세현상」을 맹신, 본인의 실력이나 의지, 제반여건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재수를 택하는 수험생이 많은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재수는 본인과 가족 모두에게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의 재수열기와 입시학원, 그리고 재수 때 유의사항 등에 대해 알아본다.
◇재수열기=「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는 말이 실감날 만큼 재수가 보편화되는 추세다.
재수생 숫자도 해마다 늘어 87학년도 23만여 명에서 88학년도 25만6천 여명, 89학년도 26만2천 여명, 90학년도 28만1천 여명으로 증가, 91학년도에는 3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대학정원은 제자리걸음인 반면 수험생은 계속 늘어나 탈락 생들의 절대숫자가 증가한데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전문대 진학이나 사회진출을 외면하고 재도전에 나서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고득점 재수생도 많아져 90학년도 입시에서도 2백70점 이상을 받고도 낙방한 서울대 응시생 3천2백10명 대부분을 포함, 줄잡아 7천명 가까운 2백70점 이상 우수생들이 재수를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고의 진학담당 조정인 교사(57·물리)는『성적이 좋든 나쁘든 떨어진 학생 대부분이 재수하겠다고 나서고 있다』며 『상위권 학생들의 경우 재수하면 성적이 더 올라가는 수가 많아 본인의 뜻대로 하도록 하고 있지만 하위권 학생들은 재수해도 성공하는 사례가 드물어 말리고 있으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수를 원하는 학생 가운데는 명문대 합격자들도 많다. 소위 1지망에 떨어지고 2지망에 붙어 불만을 품은 학생들이다.
최근 가족들과 함께 종로학원에 입학원서를 접수시킨 최모군(18·춘천C고3)은『서울대에 응시, 1지망인 산업공학과에 떨어지고 2지망인 농공학과에 붙었다』며 『원하지 않는 학과를 다니느니 휴학하고 1년 더 공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입시학원=재수 희망자의 대부분은 대입종합학원을 찾게 되는데 서울에 있는 10여개 학원 가운데 세칭 명문으로 꼽히고 있는 종로·대성학원의 경우 대입보다 더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입학할 수 있다.
정원3천6백명의 종로학원과 4천8백명의 대성학원은 각각 정원의 3분의2정도를 무시험전형 (모의고사 문과2백80점 이상·이과2백85점 이상)으로 뽑기 때문에 시험으로 뽑는 인원은 2천8백명 정도. 두 학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해 지원자가 3만 명을 넘을 것으로 보여 평균경쟁율이 지난해의 7∼8대 1보다 훨씬 높아질 전망이다.
이들 학원 외에 정일·양지·영재학원 등도 최소한 3대1의 경쟁을 거쳐야 입학할 수 있다.
이밖에 부천·성남·포천 등 서울근교에「소수정예의 스파르타식 교육」을 기치로 내건 합숙학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성업중이다.
◇재수 때 유의사항=「반 학생 반 사회인」인 재수생들은 대부분 소속이 명확치 않은 상태에서 정체감의 상실로 인해 정신적 방황과 갈등을 겪게 된다. 게다가「또 실패하면 어쩌나」하는 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해 심한 불안감과 강박관념에 휩싸이는 수가 많다.
지난해 서울대 법학과에 응시했다가 실패, 재수 끝에 올해 합격한 심우정군(18·서울S고졸)은『재수생이 겪는 고통은 크게 세 가지』라며 『실패직후에는 무력한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가족·친구·친지 등에 대한 부끄러움 등으로 괴롭고, 재수 초기에는 소속감의 결여와 사회가 허용하는 온갖 유혹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극기과정이 어렵고, 재수 말기에는 또 실패할 것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떨쳐내는 것이 힘들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병후 종로신경정신과 병원 원장은『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재수생들은 심리적 압박감과 안정감의 결여로 인해 원하는 만큼 공부가 안 되는 수가 많다』며 『이때는 가족·친구들과의 따뜻한 대화와 건전한 취미생활을 통해 이겨내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 원장은『재수기간중 부모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하고『심하게 다그치거나 지나치게 감싸지 말고 평소와 다름없이 대하면서 자주 대화를 가져야 하나 부모들은 대화를 설득이나 훈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어 탈』이라고 덧붙였다.
또 한명섭 YMCA 청소년상담실장은『재수는 인생에서 있을 수 있는 과정중 하나일 뿐인데 부모와 재수생 모두 이를 인생의 전부인양 심각히 여기고 있어 문제』라며 『부모 뿐만 아니라 출신고교와 사회에서도 지속적인 관심과 따뜻한 애정을 기울여야 재수생의 비행과 중도 탈락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동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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