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교수 퇴임식, "벗이 먼데서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않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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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아닌 숲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대변해 온 노교수의 퇴장은 아름다웠다. 국내 대표적인 좌파지식인이자 옥중서간문을 엮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유명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신영복교수의 정년퇴임식이 25일 밤 성공회대 1만광장에서 지인 및 정·재계 유명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콘서트 형식으로 열렸다.

주최측이 준비한 400여개의 좌석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광장 뒤편 대학성당까지 빼곡히 들어찬 1500여명의 청중들은 두 시간을 훌쩍 넘긴 퇴임식 내내 자리를 지키며 신 교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새로운 내일을 축하해줬다.

신교수의 제자 윤도현(신문방송학과 재학)은 ‘타잔’을 부르며 호쾌하게 첫 무대를 장식했고, 강산에는 신교수를 위해 만든 ‘지금’이란 노래로 애정을 표현했다.

하얀 베옷을 입고 등장한 장사익은 예의 장쾌한 목소리로 ‘동백아가씨’를 독특하게 소화해 청중을 사로잡았다.

행사 중반부터 비가 왔지만 동요하지 않고 전직 장관 · 기업 총수· 일반 시민 할 것 없이 주최측에서 미리 나눠준 우비를 일사분란하게 꺼내 입는 청중들의 모습은 ‘더불어 함께’라는 신교수의 말을 떠오르게 했다.

한편 이날 행사는 가수들의 공연 뿐 아니라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 크로스포인트 대표 손혜원, 유니온커뮤니케이션 회장 심실, 영화배우 권해효,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신교수의 지인들이 신교수와 자신의 인연을 회고하는 ‘이야기- 10분 스피치’로 꾸며졌다.

권해효가 “대학시절 연기공부를 할 때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배우의 감성을 익혔다”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한 구절을 암송하자 신교수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선배는 천상 청년이다. 감옥에서 20년, 출감해서 20년의 세월이 지났고, 선배는 오늘부터 세 번째 20년을 맞이하는 것이다”라며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씨앗이 되 줄 것을 당부했다.

소설가 조정래는 “신 교수같은 사람과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며 퇴임을 축하했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성공회대학교는 서울에서 참 멀다. 지리적으로 멀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담론 지형에서도 변두리에 있다”며 “우리학교를 찾는 이들에게 항상 <논어>의 ‘벗이 찾아오는데 어찌 기쁘지 않으리오’란 말을 한다. 오늘 참석해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무대에 서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조촐한 개인 예배형 퇴임식을 하려 했는데 본의 아니게 규모가 커졌다”며 “이건 내가 우리 학교에 지는 빚이기도 하다. 퇴임 후에도 석좌교수로 학교에 남아 2학기부터 사회과학부 대학원 강의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처음에는 정년퇴임이란 말이 어색했는데, 격변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 옆길로 새지 않고 내 갈 길을 갔다는 게 참 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모든 사람들이 자기 갈 길을 올곧게 가길 당부했다.

신 교수가 감옥에서 출감하던 사람들에게 불러주던 노래 ‘냇물이 흘러흘러’를 성공회대 교수밴드 ‘더숲트리오’와 함께 열창한 걸 끝으로, 두 시간여 동안 이어진 노교수의 축제는 끝났다.

신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복역한 후 성공회대에서 17년 간 교편을 잡아왔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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