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 "덩치 커도 달리기 1등 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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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이 서울 태릉선수촌 야산에서 모처럼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래 사진은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장미란의 모습. 안성식 기자, [연합뉴스]

"역도를 힘으로만 하는 줄 아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아요. 기술.스피드가 합쳐져 얼마나 좋은 자세로

드느냐가 관건이에요. 좋은 선생님과 꾸준한 연습 없이는 좋은 성적이 불가능하죠.

뭐 제가 잘났다는 건 아니고…."(웃음) '세계에서 가장 힘센 여자' 장미란(23.원주시청)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지난 5월 한.중.일 초청대회 여자역도 무제한급(75㎏ 이상급) 인상(138㎏)과 용상(318㎏)에서 세계 신기록을 작성한 장미란은 다음달 세계역도선수권(도미니카공화국)과 12월 도하 아시안게임에 대비해 태릉선수촌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않고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장미란이었지만 인터뷰에는 친절히 응했다.

세계신기록 달성 때의 감동을 끄집어냈다.

"연습 때 한두 번 그 기록을 낸 적이 있었어요. 준비를 착실히 했고 한국에서 열렸다는 이점도 있었고요."

김동희 역도 여자대표팀 코치는 "미란이의 강점은 실전에 강하다는 것이다. 4년간 지도해 왔지만 연습 때만 못했던 경기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세계대회의 목표는 물론 우승이고, 가장 큰 걸림돌도 물론 중국 선수다.

"(라이벌이었던) 탕궁훙이나 딩메이유안은 선수생활을 접었다고 들었다"는 장미란은 무슈앙슈앙을 적수로 꼽았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장미란은 용상과 합계에서 우승했지만 인상 우승은 무슈앙슈앙의 몫이었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 전에 중국에서 장춘 지역 팀과 합동훈련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무슈앙슈앙이 있었어요. 지난해 보니 엄청나게 발전했더라고요."

염동철 대표팀 감독은 이번 세계대회에 감추어 놓은 목표가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여자 75㎏ 이상급에 중국 선수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에 중국을 확실히 눌러놓으면 베이징올림픽에서 여자 75㎏ 이상급은 중국이 전략적으로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염 감독은 말한다. 올림픽 역도에서 한 국가는 7체급 중 4체급까지 선수를 출전시킬 수 있다. 중국이 최중량급에서 출전을 포기한다면 여자 역도 최강국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는 일이다. 장미란이기에 가능한 시나리오다.

무제한급에서 1m70㎝, 114kg의 체격은 오히려 왜소한(?) 느낌을 준다. 그 체격으로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는 괴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기술.스피드.자세를 나열하던 장미란은 굳이 얘기하자면 '튼튼한 하체'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역도 선수 출신이에요. 주위에서 아버지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어릴 때 여자애들 중에서 덩치가 제일 컸죠. 괴롭히는 남자애들이 없었어요.(웃음) 그러면서도 달리기는 1등을 놓치지 않아 선생님들이 놀라셨어요."

'장미란' 하면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다 잡았던 금메달을 마지막에 탕궁훙에게 내준 일이 떠오른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은메달 딴 것에 감사했고 다른 준비를 하게 한 계기가 됐어요."

올림픽 직후 잠시 슬럼프에 빠졌던 장미란은 이후 승승장구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운동을 그만두면 횟집을 운영하고 싶어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물고기를 좋아한다고 말한 것뿐인데 와전된 것"이라고 밝힌 장미란은 "운동 그만두면 영어 공부하러 외국 유학도 가고 싶고, 요리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찌개를 제일 좋아하고 쉬는 시간엔 기독 서적을 열심히 읽고 영화 '각설탕'을 보고 펑펑 울었다는 강원도 처녀.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자신하느냐고 물었다. "중국엔 좋은 선수가 많아 어떤 선수가 나올지 알 수 없다"는 그는 "꾸준히 연습한 만큼 성적이 나온다면 만족"이라고 말했다.

악수할 때 느껴진 손바닥의 굳은살이 '꾸준한 연습'을 말해줬다.

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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