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보다 많은 성인오락실' 중앙일보, 지난해부터 지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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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이야기 파문'과 관련한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의 '언론책임론'이 논란을 빚고 있다. 이 실장은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사안은 언론이 (입법.행정.사법부에 이은) 국정 4륜(輪)의 한 축으로서 사회 환경 감시 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례로 언론학 교과서에 기록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언론에서 최근 1주일 새 이 문제가 터졌다. 언론이 바다이야기 문제를 소홀히 다뤄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본지는 도박장으로 변한 성인오락실의 실태를 여러 차례에 걸쳐 보도하면서 그 위험성과 문제를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21일과 22일 이틀에 걸쳐 '주택가 파고드는 성인오락실 도박'시리즈를 연재해 바다이야기.황금성.스크린 경마 등 성인오락실의 폐해를 가장 먼저 파헤쳤다. 이 기사는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이용해 2002년에 비해 50% 이상 늘어난 성인오락실이 주택가 곳곳에 파고들었으며, 특히 일부 지역에서는 세탁소와 약국보다 오락실이 많다는 점을 밝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또 상품권 환전소와 배당금 조작 등 현재 불거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이미 그 당시에 지적했다. 도박게임에 중독돼 회사에서 해직당한 채 오락실을 전전하던 사람들과 사흘간 동행하며 성인오락의 폐해를 보도하기도 했다. 시리즈가 게재된 이후 대검찰청에서 "불법 사행성 영업에 대해 무기한 단속을 하겠다"고 밝혔고, 일선 경찰이 단속을 강화하는 등 성인오락실 문제가 본격 이슈화됐다. 기사를 본 수많은 도박 중독자들이 전화나 e-메일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올해 6월에는 안방까지 파고든 온라인 도박의 실태를 속보로 알리며 점점 교묘해지는 성인오락의 심각성을 알렸다. 이외에도 'PC방.성인오락실 규제 강화''위폐(위조지폐)는 성인오락실을 노린다' 등의 기사로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왔다.

2002년에는 성인용 오락실에서 경품용 상품권이 허가된 지 6개월 후 '불.탈법 오락장 우후죽순'이라는 기사로 경품용 상품권 문제를 다뤘다. 게임기 심의를 둘러싼 영상물등급위원회와 게임기 업체 사이의 유착관계는 2004년 12월 영상물등급위원회 소위원회 전 의장 조모(51)씨가 검찰에 구속되면서 사실로 드러났던 사안이다.

당시 조씨는 1억5000만원의 뇌물을 받고 게임등급 심의를 내준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 이후에도 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화여대 이재경(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바다이야기 사태는 언론의 꾸준한 지적을 정부가 무시하고 방치한 결과"라고 말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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