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맹점 부풀리기 … 회계장부 조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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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체인들이 경품용 상품권 사용을 제한하면서 일반인도 상품권 사용에 지장을 받게 됐다. 그러나 '상품권 대란'에 대한 지나친 우려가 상품권 유통시장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경품용 상품권.

소문으로만 떠돌던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들의 금품 로비 정황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24일 검찰이 상품권 발행업체 19개 사를 동시에 압수수색한 결과 확실한 로비 정황을 잡았다는 것이 검찰 주변의 전언이다.

실제 다음커머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는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 일가가 최대주주로 있는 다음커머스가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로 선정되기 위해 2004년 10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진행된 상품권 업체 선정 과정에서 브로커 이모씨를 통해 한국게임산업개발원 관계자와 문화관광부의 담당 공무원에게 금품을 건넸음을 시사했다.

◆ 정치권.정부 상대 로비=상품권 발행업체들이 업체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주관 기관인 게임산업개발원이나 문화부 등에 로비를 펼쳤다는 증언과 구체적인 정황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상품권 발행업체로 지정받으려는 60여 개 업체 가운데 탈락한 한 업체 사장은 "각 회사가 치열한 로비전을 펼쳤고, 국회의원들과 문화부에도 상품권 업체 지정을 원하는 청탁 전화가 쇄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에는 여권 실세 정치인까지 특정 업체를 대신해 문화부 등에 로비를 벌였다는 증언이 나왔다. 상품권 정책이 '인증제'에서 '지정제'로 바뀌는 시점인 지난해 3~7월 10여 개 상품권 업체가 자금을 모아 정.관계 로비에 사용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또 지난해 11월 오락실 업주들의 이익단체인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 전직 임원이 상품권 업체를 대신해 문화부와 게임산업개발원을 상대로 로비를 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져 상품권 발행업체들의 금품 로비 사실이 속속 드러날 전망이다.

◆ 가맹점 수 허위 기재=상품권 발행업체들이 가맹점 수를 허위로 기재해 심사를 통과했다는 사실도 검찰 수사 대상이다. 2005년 7월 인증제가 폐지되고 지정제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가맹점 수 허위 자료 제출 등으로 인증이 취소됐던 업체 11곳이 다시 발행업체로 지정됐다는 점에서 심사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지정 과정에서 탈락한 업체들의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가맹점 수를 늘리기 위해 미용실까지 체인망에 넣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커머스의 압수수색 영장에는 심사 기준을 맞추기 위해 가맹점 실적을 속이고 조작된 서류를 제출해 상품권 업체 심사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가 들어 있다.

최병호 경품용 상품권 발행사협의회장은 24일 기자회견에서 "자료제출 시점과 실사 시점이 다른 데서 기인한 오해에 불과하다"며 "당시 청문 실사까지 진행됐으며, 11개 업체는 어떤 허위 자료도 제출한 적이 없다"고 항변했었다.

◆ 한도 초과 발행 및 분식회계 의혹=상품권 발행업체들은 인증과 지정을 받을 수 없는 재정 상태에도 현금 흐름이 양호한 것처럼 회계 서류를 조작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검찰은 상품권 발행업체들이 발행 한도를 초과해 상품권을 찍어낸 뒤 이를 유통시켜 불법 이익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1월 싸이렉스 길모 대표가 한도를 넘어 상품권을 초과 발행한 사실이 게임산업개발원의 실사를 통해 밝혀지면서 구속된 사실에 비춰 상품권 발행업체 사이에서 한도를 넘어선 발행이 관행적으로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장당 수익이 40~60원이니까 수억원대의 비자금을 손쉽게 챙길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경품용 상품권 인쇄 업체는 전국에 10여 개 정도다. 상품권 발행업체인 A사 관계자는 "인쇄소가 게임산업개발원과 서울보증보험으로부터 철저한 사전.사후 관리를 받고 있지만 발행업체가 인쇄소를 상대로 이중 발행 또는 한도를 초과한 발행을 요구할 경우 지속적인 거래를 위해 뿌리치기 힘들 것"이라며 "이중 발행 등을 통해 인쇄된 상품권은 오락실에서 3분의 1 정도 사용되고 있는 '딱지 상품권(불법 상품권)'과 섞여 유통되기 마련"이라고 밝혔다. 이중 발행된 상품권이나 딱지 상품권은 거래 명세를 알 수 없어 추적하기 매우 힘들다. 이 때문에 충분히 로비 자금으로 쓰일 수 있다. 발행업체들이 불법으로 조성된 자금을 로비용으로 쓰기 위해 회계 장부를 조작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B 상품권 발행사 관계자는 "1회 사용된 상품권을 폐기하고 새로 인쇄하는 과정에서 불법 행위를 저지르기는 매우 힘들다"며 "예를 들어 상품권 제조에 쓰이는 특수 용지는 조폐공사가 단독으로 공급하며 철저하게 관리해 이중 발행은 구조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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