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빛」 세계 곳곳에 보여줄터(90년을 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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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20여개국의 예술단 기념공연 총지휘/로마월드컵 전야때 「한국의 밤」도 계획
강호영씨(북경아시안게임 문화행사 「아시아의 빛」 예술총감독)
이제껏 한국에선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인재가 중국에서 전격 기용돼 물만난 고기처럼 기량을 한껏 뽐낼 수 있게 됐다.
제11회 북경아시안게임 개막 전의 최대 문화홍보행사인 「아시아의 빛」 예술총감독을 맡은 한국민간예술교류사업단(서울 삼청동)대표 강호영씨(34).
『처음엔 정말 꿈만 같았습니다. 그러고는 제대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잠이 오질 않더군요. 하지만 이젠 거뜬히 잘 해낼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밤낮 없이 뛰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이 엄청난 일을 도맡아 치러달라는 중국당국의 요청서를 받은 직후의 「충격에 가까운 감격」에서 바로 벗어나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부하는 「남다른 안목과 기획력」,그리고 촉박한 기일에서 오는 긴장감 때문이었다.
『오는 4월 중순부터 약한달간 북경ㆍ남경ㆍ상해를 돌며 약 11회에 걸쳐 「아시아의 빛」을 20억 아시아인뿐 아니라 서구 여러나라에까지 두루 비춰줘야합니다. 3대 도시의 대규모 실내체육관에 모인 청중들은 물론 생방송및 위성중계될 그 공연실황을 TV로 보게될 사람들이 모두 경탄하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는 한국과 중국 외에도 북한ㆍ홍콩ㆍ싱가포르ㆍ말레이시아ㆍ태국ㆍ인도네시아ㆍ일본ㆍ필리핀ㆍ대만ㆍ인도 등 아시아 각국및 구미의 관계협조국을 포함한 20여개국의 가수와 예술단체들이 매회 약 2시간씩 펼치게 될 이 공연을 통해 「단결ㆍ우의ㆍ진보」를 내건 북경아시안게임의 정신과 개막의미를 전세계에 널리 알려야할 책임을 지고 있다.
그는 이달중으로 중국에 가서 1차 현지준비작업을 마치고 2월 중순부터는 이 행사를 거들어줄 한국의 기획및 진행요원 등 40여명으로 구성된 스태프를 이끌고 다시 중국에 가 「아시아의 빛」이 꺼질 때까지 현지에서 일한다.
이 행사의 조명은 일본,무대장치는 홍콩,레이저광선분야는 미국 등 여러나라의 내노라하는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그의 감독하에 이 행사를 돕는다.
중국측은 건국이래 처음 갖는 이 대규모 국제행사의 중요성과 비중을 고려,당과 군의 고위책임자및 각 소장 등이 두루 참관키로 했으며 공연관계 인원및 장비를 운송하기 위한 전용 항공기까지 내놓는 등 「최대의 협조와 지원」을 약속했다.
강씨는 이 행사비용을 모두 직접 도맡게 돼있으나 중국및 아시아 전역과 그밖의 관심있는 여러나라에 위성중계될 이 공연의 TV광고권과 생중계권을 모두 양도받는 조건이어서 20억원가량의 행사비용을 빼더라도 10억원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자신한다.
중국이 자금및 경험 부족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이만한 행사의 예술총감독이란 중책을 외국인에게 맡기기로 결정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중국측 관계자들은 한때 강씨에게 맡기는 것을 못시 망설였으나 강씨가 『서울올림픽 공식노래 작곡을 외국인에게 의뢰했던 것은 한국에 작곡가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 노래를 세계적인 애창곡으로 만들기 위한 거시적 계획 때문이었다』고 설명하자 긍정적으로 다시 생각한 것 같다고 그는 전한다.
원래 「아시아의 빛」 행사는 북경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문예전람부가 중국작가협회ㆍ중국문학기금회 소속 중국문채성상공사및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공연공사의 북경시연출공사에 추진을 위탁한 것으로 이에따라 구성된 「아시안의 빛 대공연회연출공사」가 그를 예술총감독으로 기용했다.
이 행사 관계자들이 『강호영선생에게 예술총감독을 맡겼다가 원래 예상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경우는 우리가 「옷을 벗겠다」』면서까지 그를 적극 밀어준 속사정이 또한 흥미롭다. 그는 87년부터 추진해온 연변가무단의 역사적 내한공연이 천안문사태로 무산됨에 따라 이를 뒷마무리하기 위해 지난해 9월 북경을 방문했다.
당시 중국측 관계자들은 『너무 미안해 얼굴조차 들 수없다』고 했으나 그는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상황탓이니 미안해할 것없다. 나는 공연계약이 이행되지 못한 점을 따지러 온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함께 일해보자는 뜻을 밝히러 왔다』며 오히려 위로,인간적으로 서로 가까워졌고 급기야는 「아시아의 빛」 문제를 논의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의 올해 일은 「아시아의 빛」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지난 87년 대구 문화예술진흥회란 공연기획단체를 만들면서부터 추진해온 연변가무단 초청 내한공연이 북경아시안게임 직후 마침내 이뤄지게 되며 올해안에 북경방송 교향악단과 중국 서커스단의 내한공연도 치러낸다.
그는 외국인으로서 중국 어느 지역이나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는 「공작증」이란 거민신분증을 지난 해 10월 중국민족화교예술단 고문 자격으로 발급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연변사회과학원 문학예술 연구소가 발행하는 격월간 한글잡지 『문학과 예술』의 예술고문(89년 10월),퇴역군 장성과 고위간부 등 중국내 원로들의 단체인 중국노인문화교류촉진회 부주석(89년 12월) 등의 직함까지 얻는 등 중국과의 단단한 교류발판을 확보하고 있다.
그는 또 오는 6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월드컵축구대회 때도 김덕수 사물놀이패를 동원,한국팀의 경기가 시작되기 30분전에 경기장을 누비며 신명을 돋울 계획이고 「아시아의 빛」에 참가할 한국가수및 국악공연단체도 한국 축구팀의 경기가 열리는 이탈리아의 도시마다 돌며 경기전날 밤에 옥외에서 「한국의 밤」을 펼칠 궁리도 하고 있다.<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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