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간 방북경쟁을 경계함/통일방안의 한목소리 합의가 먼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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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당대표의 북한파견및 접촉을 허용키로 한다는 것은 대북접촉의 다면화와 북한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인 대화노력의 확대ㆍ강화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한 일면이 있다고 본다. 공산권의 전반적인 개방추세와 함께 지금은 문을 굳게 닫고 있는 북한도 언젠가는 문을 열게 될 것이고 우리로서는 그것을 가급적 앞당길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노력을 다 해야 한다.
그러나 정당대표의 파북과 북한접촉이라는 문제는 이런 당연하고도 필요한 원칙론에 앞서 신중히 검토해야 할 몇가지 사항을 안고 있다고 본다.
우선 통일문제ㆍ대북접촉과 같은 사안이 국내 정치의 주도권 장악에 이용될 가능성은 배제돼야 한다는 점이다. 김대중 평민당총재는 노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정당대표의 북한접촉 허용을 합의했다고 보고 올해 상반기중 평민당대표의 파북 계획과 자신의 방북용의를 밝히고 있다.
만약 이런 일이 허용되고 실현된다면 통일정책을 주도하는 정당으로서 평민당의 성가는 높아지고 국내 정치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할 수 있음에 틀림없지만 불가피하게 다른 야당의 경쟁을 촉발하고 너도 나도 대북접촉을 시도하는 현상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 그럴 경우 정부로서는 어느 한 정당에만 허용하고 다른 정당에는 불허할 수 없는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각 정당이 다투어 대북접촉을 신청하고 평양에 가겠다고 나선다면 누구는 오게 하고 누구는 못오게 하는 결정권을 평양측이 쥐게 되는 상황이 되기 쉬운데 이렇게 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대북대화나 접촉이 될 리 만무하다.
또 김총재는 접촉이 실현될 경우 평민당의 「공화국연방제」 통일방안을 북한측에 설명,설득할 것이라고 했는데 각 정당이 제각기 자기들의 통일방안을 북한측에 제시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될 일이다.
대북접촉과 교섭의 단일창구인 정부는 한민족 공동체통일방안을 내놓고 있고 각 정당은 그들대로 자기들의 방안을 낸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예컨대 북한측이 정부의 공식방안을 내리깎고 특정당안에 관심을 더 보이는 식으로 전략적 조작을 시도할 경우 지금껏 우리 정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 하든 깎아내리려 한 것이 북한의 일관된 전략이었고,우리측의 당국 대 당국의 교섭제의를 외면하면서 정당ㆍ사회단체 연석회의 등을 고집해온 북한의 태도를 생각할 때 이런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당대표의 북한접촉에 앞서 통일정책과 대북접촉의 초당적 바탕 확립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각 정치세력들이 각자의 통일방안을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각 정당이 1차적으로 할 일은 각기의 통일방안을 정부의 통일정책에 반영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며,이런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정부는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대북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마련된 통일정책은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여야 구별없이 그 추진을 위해 함께 발벗고 나선다는 것이 초당외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 실정을 보면 정부와 각 정당이 비록 내용에 있어 큰 차이는 없다고 하지만 통일방안에 있어 각기 뉘앙스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고 만족할 만한 초당적인 대북교섭의 바탕이 마련돼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우리는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대북대화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자칫 북한의 오판을 불러 남북대화나 북한의 개방촉진에 오히려 역작용을 가져올지도 모를 정당들의 경쟁적인 대북 접촉시도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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