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시장, 선포식 안 가고 대책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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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24일 오전 용산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용산 미군기지 공원화 선포식에서 참석인사들과 함께 공원 상징물에 '희망의 나무'를 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선포식이 열리는 시각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청 시장실에서 행정 1.2 부시장과 도시계획국장 등을 모아놓고 긴급 대책회의를 했다. 오 시장은 "건교부가 발의한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 우리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논점을 정리하라"며 "할 수 있는 것은 다해 보자"고 독려했다. 한나라당을 통한 대체 입법안 마련, 헌법소원 제기, 권한쟁의 심판 청구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라는 것이다.

회의가 끝난 뒤 서울시는 "미군 기지 전체를 공원으로 조성하기 바라는 서울시민의 뜻을 무시한 선포식은 개발 선포식과 다름없기 때문에 오 시장이 참석하지 않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오 시장이 반발하는 것은 정부가 미군 기지 가운데 메인 포스트와 사우스 포스트를 포함한 81만 평을 온전하게 공원으로 만들지 않을 것으로 의심하기 때문이다. 건교부 장관에게 용도변경 권한을 주도록 규정한 '용산 민족.역사공원 조성 및 주변지역 정비에 관한 특별법' 제14조를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정부 안대로 되면 공원이 들어설 자리 일부가 개발되고, 초고층 아파트 숲이 들어설 것이라는 것이다.

오 시장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무현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8일 전국 16개 시.도지사들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노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까지 공개했다. 오 시장은 "노 대통령이 '특별법은 정부와 서울시가 원만한 협의를 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한 규정'이라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서울시와 입장 조율이 안 되는 것을 전제로 법안을 만들었고, 정부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밀어붙이겠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했다.

노 대통령이 2004년 6월 밝힌 미군 기지 활용 3대 원칙도 거론했다. ▶정부가 땅 장사를 위해 부지를 민간에 매각하지 않는다 ▶부지의 구체적인 활용 방안은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결정한다 ▶지방자치단체도 정부에 땅만 내놓으라는 일방적인 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오 시장이 이처럼 용산공원 문제에 집착하는 것은 명분과 당위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시민들이 동의하는 일이라는 자신감이다. 그는 "후손들이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인 용산공원을 보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용산공원 문제를 지렛대 삼아 부드럽고 약한 이미지를 벗고 자기 색깔을 내려는 '오세훈의 야심과 의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일종의 '오세훈의 자주 선언'이라는 것이다. 오 시장은 시청 신청사 설계 변경, 오페라 하우스 건립 재검토, 시장 관사 건립 연기 등에서 이명박 전 시장과의 차별화를 시도해 왔다. 정부가 등록.취득세를 인하하려는 것도 지방세 세수(稅收)를 줄여 야당 자치단체장을 압박한다고 비난하는 등 나름대로 제 목소리를 내왔다. 원칙에서 물러서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 시장이 용산공원 문제에서 힘없이 밀릴 경우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내부 장악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강북 뉴타운 개발, 자립형 사립고 유치 등 정부와 논의해야 할 사안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청와대 '오 시장 너무 정치적'= 청와대는 오 시장이 중앙정부와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오 시장이 너무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며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선 막대한 국고가 필요한 만큼 이 사업은 서울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부담을 요하는 국가적 사업"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시의 의견은 입법 과정에서 얼마든지 개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오 시장이 선포식에 불참하는 등 마치 중앙정부와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 유감을 표했다.

김상우.신준봉 기자<swkim@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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