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후계구도와 맞물려 혼전(정계개편 바람분다: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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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계파간 득실 계산 “하자” “말자” 암투/노대통령도 파문클까 신중한 대응
민정당에 정계개편은 야당과는 또다른 의미에서 민감한 이슈다.
개편의 방향에 따라 향후 후계구도가 엄청나게 뒤바뀔 수도 있는 성격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박준규 전대표가 당해체발언파동으로 경질된 것이나 8월말 이종찬사무총장의 발언으로 인한 대폭적인 당직개편도 그 배경엔 후계구도를 둘러싼 갈등이 깔려 있었다.
여권인사와 야당의 막후접촉이 활발하고 청와대 참모들과 민정당내 실력자로 정계개편 특별연구팀이 구성되는등 적극적 움직임을 보이면서도 노태우대통령이 10일 기자회견에서 『정계개편ㆍ연합은 인위적으로 급작스럽게 해서는 안되며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심성을 보인 것도 이것이 몰고 올 충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각계파간에 정계개편을 둘러싼 복잡미묘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
정계개편을 둘러싼 논란에는 개편론과 반대ㆍ소극론으로 크게 둘로 나눠볼 수 있다.
개편론자는 주로 박철언정무장관등 대통령 직계부대와 박준규ㆍ김윤환 의원 등 TK(대구­경북) 세력 중심의 신주류,그리고 이들과 부분적으로 겹치는 구 공화파(김재순의장등) 등이다.
이에 맞서는 반대론자는 당내 민주화 우선론의 이종찬 전총장이 가장 대표적이며 민정당 창당의 중심세력인 5공파 등도 소극적이다.
문제는 노대통령의 뜻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준규 전대표ㆍ김윤환의원ㆍ박철언장관 등 TK파가 정계개편에 가장 적극적인 점이다.
이와는 반대로 지난해 8월과 12월 정계개편 구상에 앞장서 반발한 이종찬의원은 『정계개편이란 우리당이 먼저 자체개혁을 하고 그것이 야당에 충격을 주어 정계전체가 개편으로 움직이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어떤 당하고 그냥 합쳐 국회의원 숫자나 늘이자는 식의 정계개편은 의미가 없는 야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계개편을 둘러싼 이 두가지 대립된 견해에는 각각의 이해가 배경에 깔려있다는 것이 일반적 해석이다.
3공이후 계속 집권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TK 세력으로서는 다시 대권에 도전하다가 욕먹기 보다는 내각제 개헌을 통한 정계개편으로 정치권력의 혜택을 계속 누려보자는 속셈이다.
이런 속셈에 군출신등 보수강경파가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총장등은 이런 여론의 역풍으로 TK나 군부출신의 역할이 다했고 따라서 민정당내에서 달리 마땅한 대체후보를 찾기 힘들다는 점을 계산하고 있는 듯하다.
때문에 민정­평민 구도로 4당체제를 지속시켜 나갈 경우 대권에 도전할 기회가 생긴다고 보는 것이다.
민정당내에서 또 하나의 개편갈등은 구 공화당출신의 신주류 그룹과 5공 잔류파사이에 벌어지고 있다.
박준규 전대표ㆍ김재순국회의장ㆍ홍성철청와대비서실장 등 주로 원로층인 구 공화파들은 「헤쳐모여」식의 범보수연합을 구상하고 있다.
즉,민정­민주­공화당이란 당 대 당의 통합보다 이념에 따라 다시 집결,일본 자민당식의 보수대연합을 구성하자는 것이다.
이들은 기존 정당의 연립으로 갈 경우 각당의 기득권과 경계를 계속 유지하게 되지만 헤쳐모여 하게되면 범여권의 원로들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개편구상은 소위 5공파에게도 위협으로 느껴지고 있다.
이미 지난해 여름부터 개편설과 함께 야당이 거부하는 일부 5공파 배제설이 나돌았다. 야당에 합당의 명분을 주기 위해서는 일부인사의 배제가 불가피하다는 근거였다.
정호용의원 사퇴반대에 일부 5공파가 동조하고 나선 것은 정호용 밀어내기가 바로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더구나 원외지구당 위원장의 경우 야당과 연합할 경우 「원내 우선의 원칙」은 불가피하게 될 것이므로 결국 개밥의 도토리가 될 것이란 우려를 하고 있다.
민정당 지도부가 더이상 당내 희생자가 없을 것임을 거듭 확인한 것이나 사조직 규제에 나선 것도 당내의 심한 동요를 다독거리는 작업이다.
이렇게 위협속에 반발하고 있는 5공파 원외위원장들은 기존의 민우회등을 중심으로 권익현 전대표의 재기를 기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개중에는 전두환씨가 하산할 경우 새로운 여권내 결집체로 작용할 가능성을 내다보는 사람도 있다. 또 이 전총장측과도 연대가능성을 보이고 있어 자칫하면 반노전선이 이뤄질 수도 있을 전망이다.
이런 4분5열의 양상때문에 지난 당직개편에서는 TK 완전배제와 박태준대표의 기용등 5공파를 다시 끌어모으는 응급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당직개편으로 정계개편 논의는 당분간 소극적일 것으로 보인다. 박장관도 최근 몹시 행동을 조심하고 있다.
그러나 정계개편 자체가 완전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정계개편론을 둘러싼 수면하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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