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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In&out맛] "요리 가르치는 데 통역은 무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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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따 라 읽 어 보 세 요! 떡 볶 이."

18일 서울 신교동에 있는 푸드앤컬처아카데미. 이 요리학원 김수진 원장의 강의 모습이 평상시와는 영 딴판이다.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설명을 하는가 하면 말하는 속도도 무척 느리다. 그런데 수강생들이 따라 읽는 소리가 "떡 볶 이"가 아닌 "떠 보 기"다. 40여 명 수강생을 자세히 살펴보니 파란 눈의 총각도 있고, 일본 분위기의 아주머니에 동남아 스타일의 아가씨도 섞여 있다. 김 원장이 외국인을 상대로 한국 요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 통역하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외국어가 아닌 '토종' 한국어로 강의 중이다. 드라마 '대장금' 열풍 이후 일본.중국은 물론 동남아 사람까지 한국 음식에 관심이 늘어 외국인을 상대로 한 요리교실이 생겨났어도 이처럼 한국말로 가르치기는 무척 드문 일이다.

"연세대 언어연구교육원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하고 있는 외국인 학생들입니다. 우리나라 문화 체험을 위해 요리를 배우는 건데 굳이 일본어나 영어로 가르칠 이유가 없잖아요. 이 기회를 통해 우리 음식과 관련한 단어 하나라도 머리에 심어주려는 겁니다." 김 원장의 설명이다.

"지지고 볶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해물파전을 뒤집는 외국인 수강생의 마음도 뒤집어지고 있다.


수강생들의 눈치를 보니 요리 과정을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은 30% 내외. 절반가량은 대강 이해하는 수준이고, 나머지 20%는 말이 아니라 시연 과정을 보면서 이해하는 듯하다. 3주 단기 교육생들이 몇 명 섞여 있어서란다. 그래도 푸드앤컬처아카데미의 일본어와 영어로 가르치는 외국어 강사들은 나서지 않고 입가에 웃음만 띠고 있다.

"지난주에는 비빔밥이랑 불고기를 배웠어요. 만드는 방법이 일본에서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지 않았어요. 일본에 돌아가면 친구들을 초대해 요리해주고 싶어요." 방학기간을 활용해 한국어를 배우러 온 오쿠다 교사 부부의 말이다.

"저는 떡볶이를 빨리 만들어 먹고 싶어요. 한국 고추의 매운 맛은 훌륭해요." 러시아에서 온 코스토로미나 카트리나가 거들고 나선다. 러시아에선 보드카 한잔 못 마시던 그녀가 한국 고추의 매운 맛에 소주를 즐기는 매니어가 됐다고 한다.

떡볶이와 해물파전을 만드는 김 원장의 시연이 끝나고 세 명씩 조를 나눠 각자 요리를 하는 시간. 서울에 와서 맛있게 사먹기는 했는데 정작 만들다보니 해프닝의 연속이다. 떡볶이 안에 고추장을 연방 넣고 있어 보조강사가 얼른 달려가 말리는가 하면, 해물파전을 뒤집다가 반으로 망가지기도 한다. 한쪽에선 "오, 훌륭해요"를 외치며 박수를 치기도 한다. 멋지게 해물파전을 뒤집은 것이다.

여기저기서 보조강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도 들렸지만 수업 내내 화기애애하다.

드디어 요리 품평회 시간. 떡볶이는 그럭저럭 비슷한 모양인데 해물파전은 조별로 삐뚤빼뚤 들쭉날쭉 각양각색이다. 둥근 프라이팬에 네모로 부친 것도 있고, 이가 빠진 듯한 둥근 모양도 있다. 미국에서 온 남학생 데이비드가 속한 조는 까맣게 태우기까지 해 '오늘의 못난 해물파전'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래도 무엇이 즐거운지 모두 싱글벙글이다.

품평회가 끝나고 조별로 만든 음식을 시식하는 시간은 '찰나'였다. 모두들 '게눈 감추 듯' 해치운 것. 음식이 부족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태국인 수팡 판진다는 "하숙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재료를 사서 더 만들어 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외국인 수강생들에게 한국 음식이 어떠냐고 묻자 "다음주에 만들 김밥이랑 잡채도 빨리 먹고 싶다"며 환한 얼굴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글=유지상 기자 <yjsang@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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