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의광고로보는세상] 진실과 거짓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4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1994년 작 '트루 라이즈'라는 영화가 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국가 기밀 정보국 오메가 섹터에서 최고의 비밀 공작원으로 일하지만 아내에겐 이 사실을 숨긴다. 외로움을 느낀 그의 아내는 자기가 첩보원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시시한 남자에게 끌려 몰래 데이트를 하기에 이른다. 이런 '진정한 거짓말들'로 인한 여러 사건들을 다룬 오락 액션영화로 그런대로 평가 받았던 작품이다. 거짓말의 연속으로 진행되던 에피소드는 부부 간의 진정한 사랑이라는 진실로 끝을 맺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거친 흑백 입자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어떤 형태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카메라가 약간 뒤로 빠지니 누군가의 얼굴을 찍은 흑백 사진을 확대한 한 부분인 것 같다. 목소리가 들린다. "이 사람은 파괴된 국가를 구했고, 경제를 살렸으며, 국민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웅장한 드럼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드럼 소리 사이사이 목소리는 계속된다. "600만 명에 달했던 실업자 수는 그의 집권 4년 만에 90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이 사람은 GNP를 102% 증가시켰으며 일인당 국민소득을 두 배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1억7500만 마르크에 불과하던 산업 이익을 50억 마르크로 증가시켰으며, 천문학적 숫자로 날뛰던 인플레이션을 연간 25% 이내로 잡았습니다." "음악과 미술을 사랑했으며, 젊은 시절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드럼 소리가 점점 빨라지면서 카메라가 점점 뒤로 빠진다. 조악한 입자들이 작아지면서 한 인물의 얼굴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아돌프 히틀러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진실만을 얘기하면서도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이 읽는 신문이 당신에게 전체적인 진실을 얘기하고 있는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폴뤼아 디 상파울루' 다른 어떤 것도 이 신문의 논점을 살 수 없기에 모두들 이 신문을 삽니다."

'폴뤼아 디 상파울루'는 브라질의 대표적 신문이다. 군부 독재에 항거해 일어난 1984년의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 진정한 신문이란 부분적인 진실을 보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 진실의 모습까지 독자에게 제시해야 한다는 점, 그를 위해 중요한 것은 언론의 독립과 자유라는 점을 짧고 굵게 보여준 이 광고는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모았다.

징병으로 끌려갔다 전사해 야스쿠니 신사에 이른바 '합사'되어 있는 전사자들의 유족들이 '분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 문제를 놓고 한국, 대만, 일본의 세 여자가 논쟁을 하는 장면을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보았는데, 일본 여자의 논리적이고도 차분한 한 마디 한 마디가 얼마나 끔찍한 거짓말로 귀결되는지 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김동완 커뮤니케이션즈인디아 대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