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청소년 상품권 금지 규정 있었다는데 영등위 요구 전엔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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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이 23일 문화부 브리핑실에서 사행성 전자오락인 '바다이야기'와 관련한 정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도박성 게임물을 억제하려 하자 주무 부처인 문화관광부가 오히려 제동을 걸어 사행성을 조장했다는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문화부가 영등위에 게임의 도박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대폭 완화하거나 삭제하도록 요구한 공문(2004년 5월 10일자)이 22일 공개된 바 있다. 당시 영등위의 심의규정 개정안에는 돈을 걸어 상품권으로 돌려받는 비율을 최대 20배로 제한하고 연타 기능도 방지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문화부 공문은 이런 내용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수정안을 제시하고 있다.

23일엔 이진오 전 영등위 아케이드게임 소위 위원이 "문화부가 영등위 안을 그대로 수용했다면 바다이야기 같은 게임은 아예 나올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영등위는 바다이야기 같은 게임이 나올까 우려해 빠찡꼬.슬롯머신 등 카지노형 게임을 금지하려 했다"며 "공청회도 두 번이나 열어 심의규정 개정안에 반영했는데 문화부가 공문 한 장으로 뒤집어 버렸다"고 지적했다.

문화부는 또 한국게임산업개발원과 함께 펴낸 '2004년 게임백서'에서 영등위의 심의기준에 대해 "산업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한 사실이 확인됐다. 게임백서는 "심의기준대로 제작할 경우 게임이 게임으로서 역할을 할 수 없다고 게임 개발사들은 말한다. 비현실적인 심의는 이용자들의 외면을 초래하고 게임장의 수익을 낮추며 개발사의 매출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문화부는 23일 기자 브리핑에서 "문화부가 영등위에 사행성 규제완화를 요구했다는 것은 전적으로 오해"라고 밝혔다. 그러나 릴게임(유사 슬롯머신) 규제완화, 청소년용 게임에 상품권 허용 등 구체적인 쟁점에 대해선 충분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 릴게임 규제=2004년 5월 영등위가 릴게임의 허용범위(게임기의 전체 화면에서 릴게임이 차지하는 비율)를 25%로 억제하려 하자 문화부는 관련 규정의 삭제를 요구했다. 김용삼 당시 문화부 게임음반과장(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무과장)은 "이미 관계 법령과 상위 규정에서 릴게임 같은 사행성 게임을 금지하고 있어 영등위 안은 실효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전 과장이 제시한 영등위의 상위 규정은 릴게임을 완전히 금지한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금지할 수도 있다는 내용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지적이 나오자 문화부는 "규정의 해석은 영등위의 문제"라며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을 늘어놨다. 문화부의 요구 때문에 릴게임의 허용범위가 40%로 높아져 바다이야기 같은 도박성 게임이 퍼지게 됐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서도 김 전 과장은 "당시 문화부가 우려한 핵심은 '스크린 경마'였고 '바다이야기'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 청소년 상품권=문화부는 '전체 이용가' 게임에서 상품권을 경품으로 주지 못하도록 하는 영등위 규정도 삭제를 요구했다. 김 전 과장은 "이미 문화부 경품지급 기준고시에서 금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고시 내용을 확인한 결과 그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문화부는 2004년 12월 말에야 비로소 청소년에 대한 상품권 지급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문화부 관계자는 "시차가 있었던 부분은 인정하지만 2004년 말 이전에는 이것이 큰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편 의혹의 초점이 된 공문을 공개한 권장희 전 영등위원은 "문화부의 해명은 본질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며 "2004년 당시 문화부가 사행성 규제보다 게임물 제작자의 편의와 자율성을 앞세운 것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주정완.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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