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항공계/「화산재 구름」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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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기내유입 엔진고장/보통구름과 구별 어려워 속수무책/앵커리지 소동 계기로 본 실태
화산재구름으로 세계 항공계에 비상이 걸렸다.
앵커리지공항 인근 리다우트산이 지난해 12월16일과 지난 3일 (한국시간) 화산활동을 재개,공항사용이 각각 열흘과 나흘간씩 중단되는 사태가 빚어졌기 때문이다.
이바람에 대한항공을 비롯, 이 공항을 이용하는 세계 각국의 여객ㆍ화물기가 항로를 변경하고 있고 승객들은 며칠씩 발이 묶여 애를 태웠다.
◇원인=화산이 하루종일 폭발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화산폭발지에서 공항까지는 북동쪽으로 1백77㎞나 떨어져 있는데도 몇번의 화산폭발로 열흘씩이나 공항사용이 사실상 중단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항 주변의 항로상에 떠있는 화산재구름이 운항중인 항공기의 엔진에 치명적인 고장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엔진에 유입된 화산재는 연소실의 고온에 녹아 상대적으로 저온인 엔진 뒤쪽의 터빈에 유리막을 형성하면서 공기의 흐름을 차단,운항중인 항공기의 엔진을 돌연 중단시켜 버린다.
또 화산재는 미세한 분말이지만 고속으로 엔진에 유입되면서 압축기의 블레이드를 마모시켜 연료분사의 성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사례=화산재가 항공기의 안전에 커다란 위협으로 등장한 것은 80년 미워싱턴주 세인트헬렌산의 화산재구름으로 몇대의 군용 제트기가 추락하면서부터.
그러나 민간항공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82년 6월 콸라룸푸르에서 승객 2백40명을 태우고 호주로 가던 BA(영국항공) 소속 보잉747기와 그보다 3주 뒤에 2백여명의 승객이 탑승한 싱가포르 항공소속 보잉 747기가 모두 인도네시아 자바섬 갈룽궁산의 화산재구름을 만나 잠시 엔진이 꺼지면서 수천m를 추락하다시피 했던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앵커리지공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재발해 세계 항공계가 경악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16일 승객 2백40여명을 태우고 암스테르담에서 동경으로 가던 네덜란드 항공소속 보잉 747기가 같은 이유로 엔진 4개가 모두 정지되면서 지상 8천2백m에서 4천m까지 8분사이에 추락하다시피 하강하다 앵커리지공항에 가까스로 비상착륙했다.
◇대책=국제 민간항공기구(ICAO)는 82년부터 화산재 사고의 재발방지 방안을 강구토록 지시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뚜렷한 대책은 만들지 못하고 있다.
화산재에도 끄덕없는 엔진개발은 요원한 실정이고 화산재구름과 일반 구름의 식별이 어려워 피해가는 것도 쉽지않기 때문이다.
둘다 하얀색이어서 육안으로는 도저히 구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항공기에 부착돼 있는 레이다나 전문적인 기상관측소조차 사정은 비슷하다.
따라서 89년부터 미국 해양대기권국(NOAA)이 관리하는 4개의 인공위성으로 전세계 화산재구름의 발생과 이동을 추적,미연방항공국(FAA)과 함께 각 항공사에 통보하고 있으나 기술상의 어려움으로 실효성있는 예보는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 대한항공 미ㆍ구주노선의 경유지 변경이 보여주듯 화산재구름은 결코 남의 일만이 아니다.<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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