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사회보험 통합징수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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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건강보험.국민연금.산재보험.고용보험 등 4대 사회보험의 보험료 징수를 국세청 산하 징수공단으로 통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동일한 대상자에 대해 유사한 보험료를 4대 보험이 따로따로 징수하는 것이 비효율이고 보험료 원천징수 대행의무를 지고 있는 사업주에게도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온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정부 방침은 개혁다운 개혁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98년에도 사회보험통합추진기획단을 만들어 통합방안을 논의했지만 이해당사자의 반발로 무산된 경험이 있다. 따라서 통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보험 제도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통합의 필요성이 훨씬 높아진다. 장애와 관련해 산재보험에서는 장해연금, 국민연금에서는 장애연금으로 운영된다. 장애 등급 기준도 다르다. 근로자가 일을 하다 병이 나면 산재보험에서는 원래 앓던 병이라고 주장하면서 건강보험에 떠밀고, 건강보험은 근로과정에서 발생한 재해라고 산재보험보고 해결하라고 한다.

비슷한 상황인데도 어떤 사람은 산재보험과 국민연금 혜택을 다 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어느 쪽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제도가 따로 놀다 보니 급여가 중복되고 충돌하는 것이다.

4대 보험이 가입자 관련 자료를 연계한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아 국민연금에서 소득을 높게 신고한 사람이 건강보험에서는 소득을 숨겨 체납 보험료를 탕감받는 엉터리 같은 일이 벌어진다.

우리나라는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 비중이 크고, 인구 고령화 등으로 복지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지금처럼 제각각의 조직으로는 국민의 수요를 따라갈 수가 없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사회보험의 틀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정부의 방침대로 징수 조직을 단순히 통합하는 것보다는 급여 조직까지 완전 통합하고, 급여 제도도 가입자 위주로 개선하는 게 국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98년에는 국민연금과 고용보험을 시행한 지 얼마 안 돼 통합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였던 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회보험을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통합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징수 조직만 합한다면 국세청의 소득세 징수와 연계 및 통합도 함께 고려돼야 할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사회보험료 징수를 국세청이 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보험료가 성격상 조세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사회보험료와 조세를 다른 기관에서 걷을 필요성이 점차 없어지고 있다. 물론 현행 국세청 조직으로는 사회보험료를 징수하기에 역부족이라 할 수 있으므로 기존 사회보험 공단의 징수조직과 국세청 조직의 통합관리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사회보험 통합이 단순히 인력 감축이나 구조조정 차원에서 이뤄져서는 안 된다. 앞으로 노인수발보험과 근로장려세제(EITC)를 새로 도입하려면 5인 미만 사업장이나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력이 많이 필요하게 된다. 사회보험 통합으로 줄어드는 인력을 이러한 제도 발전과 서비스 개선에 투입한다면 추가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면서 사회보험 종사자의 고용 불안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노동조합도 반대보다는 제도의 혁신 과정에 적극 동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조직이 따로 가면 유휴 인력 때문에 구조조정의 불안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회보험의 경쟁력 확보만이 가장 확실하게 일자리를 보장할 수 있다.

사회보험제도의 주인은 정부나 공단이 아니라 가입자이고 수급자인 국민이라는 점을 인식할 때 사회보험의 발전방향은 보다 명확하게 될 것이다. 이번 징수통합 논의는 온 국민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사회보장제도 정립의 시작일 뿐이다. 이번 제도 개선을 계기로 사회보험이 참으로 국민에게 신뢰받고 사랑받는 제도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금융보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