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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만경대와 서해갑문

중앙일보

입력

첫 날 옥류관에서 점심을 먹고 호텔에 들어와 잠시 쉬고 있는데 오후 3시까지 로비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간 곳은 만경대고향집이었습니다. 바로 김일성 주석의 생가죠.

모든 스케줄은 북측에 의해 진행됐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할아버지(김보현) 때부터 살았다는 이 곳에서 김일성 주석은 14세 때인 1925년 부모님(김형직)이 중국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집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항일투쟁을 거쳐 20년 만인 1945년 해방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이 돼서 금의환향했다는 겁니다.


27일 방문한 만경대고향집의 송향춘 해설강사

만경대 안내원 송향춘(28)씨. 김형직사범대학을 나와 이곳에서 5년째 안내원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그만 몸집에 얼굴도 작은데 착 깔린 굵은 목소리로 얼마나 '경건하게' 설명을 하는 지 괜히 잘못 말했다가는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더군요.

한 쪽에 심하게 찌그러진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안내원은 이 찌그러진 항아리에 얽힌 사연을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설명을 했습니다. 소작농으로 너무나 가난하게 살았던 김일성 주석의 할머니(이보익)가 항아리를 사러 장에 갔다가 제대로 된 항아리는 사지 못하고 가장 싼 찌그러진 항아리를 사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항아리를 보니까 제대로 세우지도 못할 만큼 너무 찌그러진 데다(그래서 뒤집어 놓았습니다) 일부러 만든 것 같은 '인위적인' 냄새가 났습니다.

바로 뒤쪽의 만경봉에 올랐습니다. 해발 43m의 매우 나지막한 언덕이지만 평양이 이름 그대로 워낙 평평한 지대라서 평양전경이 다 보였습니다. 안내원의 설명은 당연히 '이 곳에서 김일성 수령님이 조국 해방의 꿈을 키웠다'는 것이죠.


만경대에서 바라다 본 평양시내의 모습

도착 다음날인 28일 오전에는 남포에 있는 서해갑문을 구경하러 갔습니다. 남포는 평양에서 서쪽으로 약 40킬로미터 떨어져있는 항구도시입니다. 서울과 인천이라고 보면 됩니다. 서해갑문은 1981년 공사를 시작해 5년 후인 1986년에 완공된 갑문입니다. 8킬로미터에 이르는 둑은 서해 바다와 대동강을 막아 평안남도 남포와 황해북도 은율군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평양에서 남포로 가는 길은 계속 왕복 10차선의 넓은 도로입니다. 길은 넓은데 차는 없고. 서울의 복잡한 길과 비교하니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가치 판단은 하지 맙시다.)

이 길의 이름이 청년영웅도로라고 합니다. 많은 청년들이 동원돼서 길을 닦았답니다. 완공된 지 3년이 됐다고 하네요. 왜 이곳에 데려왔는지 궁금했는데 곧 의문이 풀렸습니다. 역시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님의 지시'로 세워진 자랑스런 갑문이라는 것입니다.


서해갑문 입구의 사적비.

이 곳의 조수 간만 차는 7m라고 합니다. 이 갑문이 없었을 때는 밀물 때 바닷물이 대동강까지 올라와 대동강에 소금기가 많았고, 비가 올 때는 평양도 홍수 피해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갑문 건설로 말미암아 홍수피해를 없앴고, 가뭄으로 대동강물이 부족할 때는 반대로 바닷물을 끌어들여 강물을 관계용수로 사용한다는군요.(바닷물은 무거우므로 강물이 위로 뜬다고 설명합니다.)

이 갑문을 만드는데 인민군 3만 명이 동원됐고, 40억 달러가 들었답니다. '수령님'의 지시에 따라 이 사업을 시작할 때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은 너무 황당한 사업이라서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순전히 북한의 힘으로 밀어붙여서 3년만에 완공했다고 합니다.


서해갑문 사적관에서 최영옥 해설원이 서해갑문의 공사진행 과정과 규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대규모 건설을 하다보니 무수한 사람이 희생됐다고 합니다. 이들은 모두 '영웅' 칭호를 줘 가족들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5박6일 동안 여기저기 다니면서 '위대하신 수령님' 소리를 한 5백 번은 들은 것 같습니다. '세뇌'라는 게 정말 장난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사회부 기자 시절이던 1987년 대통령 선거 때 YS를 9일 동안 따라다닌 적이 있습니다. 매일 다섯 차례 정도 유세를 하는데 가는 곳마다 "김영삼""김영삼"하는 연호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마지막 부산과 마산 유세 때는 절정에 이르렀죠. 모든 일정을 마치고 부산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타고 귀경할 때였습니다. 기차바퀴가 덜커덕거리는 소리가 영락없이 제 귀에는 "김영삼""김영삼"하고 들렸습니다. 환청이죠. 그 때 이후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는데 바로 이번에 그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하도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위대하신 수령님' 소리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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