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동의 도」로 더불어 사는 세상을"|신년탐방 김대산 원불교 종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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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불교 집안의 옛 도인들은 잎이 다 떨어진 겨울철 벌거벗은 나무에 부는 바람을 체로금풍 (번뇌·망상의 나뭇잎을 털어버린 신심탈낙의 경지) 이라했다. 새해 아침 겨울철 풍광도 엿볼겸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일원대도의 일상속에서 법등을 밝혀 불일·증휘하고 있는 원불교 대산종법사(77)가 주석한 이리시 교외 영모묘원내의 「비닐하우스 왕궁」을 찾아왔다. 문명의 군더더기라곤 비닐뿐인 대산종법사의 「비닐하우스 응접실」 은 거친 각목을 세워 만든 10평 남짓의 흔히 보는 비닐하우스였지만 한낮의 밝은 채광과 태양열을 받아 훈훈했고, 넉넉한 푸근함을 안겨주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요즈음은어찌 지내시는지요.
『날마다가 좋은 날이오.』
-몇달전까지만해도 많이 편찮으시다고 들었는데 건강이 아주 좋아 보이십니다. 특별한 건강회복 비방이라도 있으신지요.
『오줌이나 좀 눠야겠군. 이런 사소한 일조차도 내자신이 몸소하오.』(육신의 유지나 지혜의 닦음은 스스로가 할일이지 누가 대신해서는 해줄 수 없다는 뜻인것 같았다. 요사이 흔히 보듯 건강을 유지한답시고 해괴한 「건강식」 을 탐하는 것등이 무명의 소치임을 일깨워 주는 뜨끔한 한마디로 받아 들여지기도 했다.)
-이제 5공청산의 숙제가 그런대로 넘어가 90년대의 문틈에 밝은 서광이 비치는 듯도 한데 종법사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세상사람들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 너무 집착해 귀중한 시간들을 낭비한단 말야. 지난 일은 묻어 버려야해. 다만 나쁜 전철을 되밟지 않도록 「역사적 교훈」만 취하면 되는게야.

<막오른 「하나의세계」>
노태우대통령과 3김씨가 5공청산의 대 타협을 한 것은 대견스런 성공이었다고 봐요. 이제 1노3김은 5공청산을 계기로 「깨친 사람에게는 영원한 미래가 있을 뿐」 이라는 한 소식을 되새겨 대통령이 됐거나 되겠다는데만 마음을 쓰지말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진력하는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라는 생각을 가져주었으면 해요.』
-그러면 전두환씨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자유롭게 살게 해줘야지. 그리고 외국에 나가 사는 것 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살아야 돼. 이는 본인을 위해서도 우리국민을 위해서도 꼭 그렇게 해야될 일이라고 믿어요.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부탁하고 싶으건 제발 새해부터는 국민과 언론은 더 이상은 전씨문제에 매달리지 않았으면 좋겠소.』
-6공화국을 이끌고 있는 노태우대통렁의 정치지도력을 빗대 「물대통령」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차나 한잔 마시지. 노대통령한테는 지난 87년 대통령후보 때 찾아 봤기에 이 촌늙은이가 한마디 부탁해 둔게 있으니까. (선문의 도인들이 납자들의 삼문에 「가서 차나 한잔 마시게(끽다거)」라고 했던 이야기가 얼핏 떠올라 당황했다. 원래 이 말은 허튼 수작 늘어 놓지 말고 여내법신의 실상이나 보고 가라는 심오한 선구다.)
붓글씨로 써 주기까지 했던 이 늙은이 부탁은 대참회·대해원·대사면·대정진·대보은· 대진급이었소. 글로 써주지는 않았지만 내가 말로 특히 강조한게 하나 있는데「다시는 군인이 절대 총을 들고 나시는 일이 없어야하고 또 군대를 절대로 정치목적에 동원해서도 안된다」는 거였소.』
-세속 정치얘기를 너무 길게한 것 같군요. 여러 징조로 보아 공존과, 화해의 세기가 될 것도 같은 그 세기를 대비해야할 세기말 10년의 문턱에 들어 섰습니다. 이 중요한 전환의 90년대를 살아갈 삶의 자세는 과연 어떠해야 할지 한 말씀 해 주시지요.
『90년대는 무엇보다도 「화동의 도」를 세워야해요. 우리 원불교가 오래전부터 예언적으로 제창해온 「하나의 세계주의」가 이제 막을 열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인류는 불가피하게라도 하나로 더 불어 살 수 밖에 없게 됐는데 이러한 세계사의 조류에 적응하려면 무엇 보다 우선해서 다른 사람과 화합·협동하는 마음 씀씀이와 물질의 나눔을 훈련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땅에 떨어진 도덕과 윤리를 부활시켜야지요. 80년대의 우리정치와 최근의 경제가 다소 흔들린 것도 따지고 보면 정치도덕과 기업윤리·근로자의 도가 바로 서 있지 않은데 그 근본 원인이 있지 않습니까. 사회를 민주화 시키겠다고 해서 상하, 장유, 노사의 윤리를 모두 한일자로 그어대는 수평적 사고의 행동만을 능사로 여기면 큰 일 납니다.』
-도라는게 당위론적이긴 하지만 여법하게 실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도라는게 별거겠어요. 우리 눈앞에 펼쳐진 우주만물이 모두 그대로 지극한 도지요. 다만 도는 차별을 꺼릴 따름인데 차별을 없애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나는 지금 이부장도 「신문기자」로 보지 않고 「부처」로 보고 있소. 관리는 백성을 대통령처럼 대하고 기업가와 근로자는 서로를 부모형제처럼 여기면 되는 겁니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가 무아무심해 모든 것에 자유롭게 대응하고 온 세계에 두루 미치되 조금도 거추장스럽지 않아요.
장자는 도의 실천에 대해 「폐문조거 출문합수」(노폭을 일일이 재지 않고 집안에서 그냥 만든 수레지만 모든 도로에 맞는다. 작위적인 수행에 의해 자기를 형성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큰 길로 들고 나가면 된다)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사람다워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도를 따르는 길 밖엔 없지요.』
-사방이 창문인 종법사의 비닐하우스 응접실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지상선경 같군요.
『아니야. 진짜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곳이란 추우면 얼어 죽이고 더우면 쪄죽이는 곳(이 세상) 이지.
공산주의가 노동의 천국도 아니고 자본주의가 자유의 낙원도 아니라는게 이제 드러나고 있지 않소. 인류문명과 오늘의 역사현장은 아직도 지상의 낙원건설이 지난함을 증언하고 있지만 개체의 인간으로서는 언제나 이 세상을 열심히 사는 희열을 가질 때 그게 바로 선경이 되는 거지요.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가져도 되겠습니다..

<공산주의는 고사지경>
『서양사람들은 흔히 인류멸망을 뜻하는 「종말」이란 말을 잘 씁니다.
그러나 우리 원불교는 1세기를 한살로 계산해 세상의 나이 20세가 되는 21세기를 성년의 해로 보고 후천의 선경세계가 펼쳐지는 때로 봅니다.
선경세계란 다름아닌 도덕의 시대로 정신과 물질이 고루 온전한(영육쌍전) 세상입니다. 대저 우주만물의 진리는 4계절의 순환처럼 도하면 쇠하며, 음과 양이 품바꿈(인과)을 하게 마련인데 이제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성한 시기를 지나 기울면서 서로의 장점을 취합하는 화동의 도를 세워 음의 선천세계를 청산하고 따사로운 양의 후천세계를 건설하게 될겁니다.
그런 조짐들은 이미 동서냉전의 종언과 독재의 청산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최근 동구공산권에 일대의 변혁바람이 불어 세계뉴스의 각광을 받고 있는데….
『공산주의는 사람을 메마르게 했고 자본주의는 퇴페와 향락의 꽃을 탐하는 물신주의가 돼 인간의 윤리와 도덕을 땅에 떨어 뜨렸습니다. 수분이 모자라면 나뭇잎이 떨어지듯 통제와 획일로 사람을 메마르게 한 공산주의가 이제 변혁을 않고는 고사할 지경이 된 것 아닙니까.
자본주의도 동구공산권이 마치 망해버린 것처럼 호들갑이나 떨면서 자신의 몸뚬이에 묻은 먼지를 털 생각은 않고 희희낙락하면 곧 쇠하고 맙니다. 자본주의도 동구공산주의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고 부활된 새 세계에 살아 남으려면 시급히 도덕과 윤리를 부활시키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야지요.』
-수천수만명의 인명이 희생된 루마니아의 비극을 신문이나 TV등을 통해 보셨겠지요.
『루마니아의 참상은 한마디로 품바꿈의 법칙이었다고 봅니다. 앞으로 다시는 인류세계에 그런 인과의 희생이 없도록 기원해야지요.』
-지난해부터 경제가 위기라는 걱정이 많습니다. 사람의 삶은 정신도 온전해야 하지만 물질도 풍요로워야 하는데….
『나는 경제를 잘 모르지만 요즘 윤리적 타락보다도 경제적 과소비가 더 걱정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과소비 풍조는 사람들이 옷입고 다니는 것만 봐도 금세 알수 있어요.
4천만 국민 모두가 과소비를 반성하고 수입의 10분의3만 쓰고 나머지는 저축하는 수지계산을 지겨 자리이타가 될 수 있도록 근검절약운동을 전개해야 될 것 같아요. 특히 종교·언론등이 근검절약의 수범을 앞장서 실천해야 합니다.』
-민주화 열기와 함께 달아오른 노사문제가 여러갈래로 얽혀 미묘한 계급갈등으로까지 발전할 우러마저 없지 않은 뜨거운 감자가 돼 비상한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만….

<종교·언론이 근검앞장>
『노사문제는 노와 사 서로가 보은의 대상이 돼 서로를 은혜롭게 생각하고 감사할줄 알아야 풀립니다. 또 한가지는 노사 모두가 「섬기는 태도」를 익혀야 합니다. 노사문제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절실하고도 긴요한 섬기는 자세는 모든 사물의 속성을 인정하고 받드는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남북통일의 성취가 2000년대에는 손에 잡힐 것도 같은데.
『15년후 쯤이면 남북이 다정한 형제로 만나게 될 것으로 내다 봅니다. 큰 일을 도모할 때는 멀리 깊게 생각해야 도모할 수 있는 지혜가 나와요. 각박한 마음, 조급한 마음으로는 큰 일을 못합니다.』
-종법사께서는 천지가 한번 뒤바뀔 90년대라는 교역기를 지나서 올 21세기는 영내쌍전, 동정일여의 법이 서는 후천선경으로 보셨는데 선경을 맞을 원불교의 준비는 무엇입니까.
『국제적으로는 우선 자비로운 세계의 어머니가 될 국제종교연합(UR)의 창설을 빨리 실현해야 합니다. 우리 원불교가 10여년전부터 제창해 온 종교유엔은 인류평화를 위해서는 가장 독선과 대립이 첨예한 종교가 「하나주의」로 뭉쳐 부처·예수·공자·노자·우리 원불교 창시자인 소대산대종사등 세계의 모든 성현들을 인류의 스승으로 모시는 원융무애한 일 원주의가 되자는 겁니다.
21세기 선경을 대비한 우리 원불교의 사회개혁 의지로는 인권·지식·교육·생활의 평등을 가정으로부터 사회→국가→세계에 충만하게 하려는 사요가 있습니다.
-선경의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네 가지 은혜 (천지은·부모은·동포은·법률은)에 감사하는 생활과 사리보다는 공익을 우선하는 지공무사의 봉사를 통해 음덕을 쌓는 삶을 살면 됩니다.
도덕과 물질이 병진돼야 열리는 대선경의 세상은 남을 돕고 봉사해도 그 모양이나 티가 나지 않는 무주상포시(음덕)가 삶을 떠받쳐 주게 됩니다. 따라서 무엇을 조금 해 놓고 얼굴을 대문짝 같이 내미는 과거시대의 일은 없어져야 겠지요.』
-종법사께서 강조하시는 화동의도가 내포한 구체적 내용은 어떤 것인지.
-의불가독식(나만 혼자 갖지 않는다)하고 독권독한(권력을 혼자서 남용한 후의 외릅고 쓸쓸한 한스러움)하지 않는 것과 공생공영·동고동락·합심합력하자는 겁니다.』
-정치이야기 좀 하나 더 해야 겠습니다. 앞으로 정치를 이끌어갈 바람직한 정치지도자상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때에 맞게, 중도를 따라, 도로서 움직이는 삼동(시동·중동·도동)의 인물이어야 합니다. 현재의 1노3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네분들은 성하면 쇠하는 이치대로 앞을 내다보고 시절인연을 따라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하는데 인색치 말아야 하며 87년 대통령선거등으로 더욱 골이 깊어진 지역감정문제를 앞장서 풀어 놓아야 합니다.

<사회 봉사활동에 힘써>
앞으로의 정치지도자는 대결과 투쟁의 명성을 떨치는 정당당수나, 술찌꺼기에나 취해 다니는 호탕한 거물로서는 국민의 선택을 절대 못받을 겁니다.』
-원불교는 모든 일을 불공드리듯 성심으로 하고, 모든 존재를 부처님으로 섬기는 신앙생활 (사사불공처처<물물>불상)을 강조하는 것으로 아는데 얼마나 잘 실천들이 되고 있는지요.
『우리는 수행이라는 걸 별도로 분리시키지 않고 일상생활과 불법을 동격으로 봅니다(생활하불법 불법조생활).
수행을 위한 참선도 우리는 어느 때 어느곳에서나 할 수 있는 무시선 무처선을 통해 살아움직이는 활선을 합니다.
또 우리 원불교는 내면적 수행보다는 사회봉사를 우선시 하면서 원망생활을「감사생활」 로, 타력생활을「자력생활」로 전환시키는데 교화의 주안점을 두고있지요.』
-원불교는 재가와 출가의 구별이 없지요.
『마음이 깨끗하면 곧 출가인거요(심정즉출가). 우리는 남녀평등도 여법하게 구현, 현재 정녀교역자들의 수가 남자교역자보다 훨씬 많습니다. 아직 사회적 평등을 우리 뜻 대로는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지만 사후평등만이라도 우선 철저히 보장키 위해 우리 교단묘지인 이곳 영모묘원은 교단이나 사회에서의 지위와 명망·부귀가 아무리 높았더라도 똑 같이 2평 크기의 평분과 똑 같은 묘비석(60cm×50cm)만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종법사님처럼 날마다가 좋은 날을 살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나와 같이 살아보면 알지. 나는 지금 종법사나 수위단원이라는 걸 전혀 의식치 않고 소동의 마음으로 살고 있소.』
대산종법사는 2시간여 동안의 비닐하우스안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이 전혀 안보였다. 질박한 「비닐하우스 왕궁」이 자성을 찾아 밝히려는 원시반본의 결정체처럼 보였던 인상을 소중히 간직하고 서둘러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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