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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의 향연 … 주민들의 '열린 음악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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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매주 화요일 도봉구청 지하 1층 로비에서 열리는 음악회는 아마추어 연주자와 주민이 만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김도훈 인턴기자

22일 낮 12시 서울 도봉구청 지하 1층 로비, 팝송 '오버 더 레인보'의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왔다. 민원봉사실을 찾은 주민들이 한두 명씩 모여들기 시작해 70여 좌석이 금세 채워졌다. 1층에서 지하 로비로 내려오는 계단에 서서 감상하는 사람도 있고 일부는 반주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초등학교 3학년 이성준(11)군의 피아노 연주가 끝난 뒤 하모니카.플루트.색소폰을 갖고 나온 단원 9명이 '로렐라이' '장안사'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등 귀에 익은 10여 곡을 연주했다.

한 시간에 걸친 음악회가 끝나자 주민들은 큰 박수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날 구청을 찾았다 우연히 음악회를 접한 정은주(42.주부.도봉구 방학동)씨는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구청에서 음악을 들으니 편안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매주 화요일 낮 12시가 되면 도봉구청 지하 로비는 작은 음악회가 열리는 공간으로 변신한다. '화요 정오 음악회'는 2004년 4월 시작해 지금까지 112회를 이어왔다.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주 공연이 열리면서 60평의 구청 로비는 지역 명소가 됐다.

여느 음악회와 다른 점은 지역에 거주하는 순수 아마추어 음악인들이 기획에서부터 연주까지 도맡아 한다는 것이다. 음악회는 플루트학원을 운영하는 장수길(42)씨가 앞장서서 만들었다. 장씨는 "음악 동호인들이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다는 점에 착안했다"며 "연주자는 자신의 기량을 쌓을 수 있고, 구민들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음악회는 초기 5명의 단원으로 시작했으나 이제는 100명을 꼽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방학이 되면 대학생들이 대거 가세해 단원이 늘었다가 개학하면 주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무대에 서는 단원은 매주 15명 안팎이다. 개인 사정상 모두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교사.강사.자영업자.학생 등 직업도 다양하다. 이날 피아노를 연주한 이군은 담임선생님의 소개로 무대에 섰다.

이들이 연주하는 장르는 클래식.동요.가요 등 다양하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다음주의 일정과 연주곡 등을 통지하면 단원들끼리 팀을 이뤄 연습한 뒤 한 팀이 2~3곡씩 연주하는 방식으로 음악회를 진행한다. 중간중간 곡의 유래와 얽힌 이야기 등을 소개해 주민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돕고 있다. 연주자들은 조금이라도 나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연주가 있는 날이면 음악회가 열리기 두 시간 전부터 나와 연습을 한다.

악기는 연주자들이 각자 가져오고 구청에서는 피아노와 음향시설을 준비한다.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연주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오카리나 연주를 맡은 유경환(62.여)씨는 "매주 화요일이면 음악을 연주하고, 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 너무나 좋다"며 "실수하는 것이 부끄러워 아직 친구들을 부르지 않았으나 조만간 초대할 날이 올 것"이라고 웃었다.

도봉구청 정강인 문화공보과장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음악회인 만큼 구청은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제공하는 것 외에는 지원하지 않는다"며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시민 연주단이 청량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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