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右)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22일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오찬을 함께 하며 용산 미군기지 공원화 문제를 논의했다. 오 시장이 추 장관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 신동연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과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은 22일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오찬 회동을 했으나 기존의 입장 차이만 확인했을 뿐 다음 일정도 잡지 못하고 헤어졌다. 정부의 입장 변화가 없을 경우 오 시장은 24일 열리는 국가공원 비전 선포식에 불참하는 것은 물론 권한쟁의 심판청구, 헌법소원도 불사한다는 강경 입장이다.
정부는 '용산 민족.역사공원 특별법안'을 다음달 국회에 상정해 통과시킬 방침이어서 극적인 반전이 없는 한 갈등이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날 회동은 서울시와 건교부 국장이 네 명씩 배석한 가운데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추 장관은 "오 시장이 인물이 좋아서 내가 (인물이) 죽는다"며 농담을 건넸다. 그러나 오 시장이 "건교부와 할 일이 많은데, 이견이 있어서 걱정"이라며 본론을 꺼내면서 분위기가 굳어졌다.
추 장관은 "이견이 있는 게 있느냐? 건교부는 서울시 행정과 함께 가야 하는 일이 많다"고 한발 뺐다. 그는 "지난해 (송파 신도시와 관련) 이명박 시장과 마찰을 빚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런 의도로 얘기한 바 없다"며 "이번에도 법안을 둘러싼 서울시의 걱정은 순전히 오해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오 시장은 건교부 장관에게 용산공원에 대한 용도지역 변경 권한을 주는 법안 제14조를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메인포스트.사우스포스트 등 용산기지 중심부 81만 평을 모두 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조항을 그대로 둘 경우 용산공원 예정지의 개발이 가능해지고, 건교부가 미군 부대의 이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용산 부지 일부를 매각할 것으로 오 시장은 내다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온전한 공원 조성이 힘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오 시장은 "제14조를 없앤다면 공원 조성 비용의 일부를 서울시가 부담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고 추 장관을 압박했다.
이에 건교부 공무원들은 "서울시가 너무 몰라준다" "용산 땅을 팔아 공원 지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추 장관은 "용산공원을 훌륭하게 조성하려면 건교부 장관이 일부 지역에 대한 용도지역 변경 권한을 갖고 주도적으로 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서울시 관계자들은 "현재도 미군 기지 주변은 공원 조성이 가능한 자연녹지지역인데, 공원을 만드는 데 건교부 장관이 굳이 이런 권한을 가질 필요가 없다"며 반박했다. 결국 이날 회동은 1시간30분 설전을 계속한 끝에 아무 소득 없이 끝났다. 오 시장은 "첫술에 배부르냐. 앞으로 논의가 더 필요할 것 같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용산공원 비전 선포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 장관은 "어떻게 하면 용산공원을 국민의 공원으로서 잘 가꿀 수 있을지 의견을 수렴하겠다"면서도 서울시가 요구한 특별법안 수정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추 장관은 "시장님이 (참석 여부를) 결정하시겠지만, 용산공원의 경우 국민적 사업이고 민족의 상징적 사업이니 참석하시리라 생각한다"며 참석을 종용했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