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0기KT배왕위전 : 세력 운용법

'제40기KT배왕위전'

<도전 5번기 제3국>
○ . 왕 위 이창호 9단 ● . 도전자 이영구 5단

제4보(44~53)=흑▲로 삭감해온 장면이다. 백A의 응수가 한눈에 떠오른다. 그러나 이창호 9단은 A를 외면하고 44로 덮어간다. 사실은 이 한 수에 세력 운용법의 진수가 담겨 있다.

중앙 집은 완성되면 크다. 그러나 중앙 집을 고집하는 것은 바보 짓이다. 중앙 집은 완성되기까지 온갖 훼방에 시달려야 하고 숱한 이용을 당하게 된다. 또 중앙에 볼모 잡혀 상대의 집이 마구 불어나는 것을 넋 놓고 바라봐야 한다.

'참고도'를 보자. 백1로 집을 지으면 흑2를 당한다. 중앙에 못지않은 큰 흑집이 상변에 공짜로 생겨난다. 백은 전 재산을 기울여 집을 지었지만 흑은 거의 공짜라는 차이가 있다. 또 백은 B의 침투를 노리고 있는데 흑C를 선수당하면 이런 맛도 다 사라진다.

물론 44로 공격한다고 해서 당장 큰 이득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51로 파고드는 상대를 눈 뜨고 지켜봐야 하는 것도 상당한 괴로움이다. 그러나 흑집이 더 이상 불어나지 못하게 하는 중대한 효과가 있다. 네 귀의 흑집이 그대로 꽁꽁 굳는다면 40여 집밖에 더 되겠는가. 50까지 백의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면서 상변 일대의 흑집은 더이 상 늘어날 수 없게 됐다.

그래도 이 바둑을 놓고 프로들에게 물으니 열 중 일곱이 흑을 잡겠다고 한다. 백의 운영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행복한 장면에서 이영구 5단이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D와 같이 큰 곳을 놔둔 채 먼 변방의 53으로 손을 돌린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