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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멧 유형의 고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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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52년 5월 영국 국영항공사 BOAC(the British Overseas Airways Corporation)는 세계 최초로 제트 여객기 시대를 열었다. 드 하빌랜드(the De Havilland)사가 제작한 코멧(Comet.혜성) 모델의 제트 비행기들은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해 한동안 잘 날았다. 승객 44명을 태울 수 있는 이 비행기는 그 전까지 85시간이 걸리던 도쿄~런던 간 비행 시간을 36시간으로 단축했다.

그러나 운항을 개시한 지 1년이 지난 53년 5월부터 1년 사이 세 대의 BOAC 소속 코멧기가 연속으로 추락했다. 첫 사고를 일으킨 콜카타발 G-ALYV편은 악천후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추정됐으나, 그 후 석 달 간격으로 떨어진 G-ALYP편과 G-ALYY편의 추락 원인은 곧장 밝혀지지 않았다.

영국 항공 당국은 모든 코멧기의 운항을 중단시키고 대대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수거된 엔진은 문제가 없었다. 사고 원인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같은 기종의 비행기로 모의실험을 한 결과 코멧기는 중대한 설계상의 결함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과도한 하중이 장기간 반복적으로 가해지면 동체에 금속피로가 누적되면서 균열이 생긴다는 것이다. 당시엔 보편적이었던 각진 모양의 비행기 창문이 균열을 가속화한다는 점도 밝혀졌다(그 후 비행기 설계에서는 금속피로의 방지책과 함께 둥근 형태의 창문 구조가 도입됐다).

이처럼 한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보이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갑자기 사고가 줄줄이 터지는 현상을 '코멧 유형의 고장(Comet Type Failure)'이라고 한다. 원인을 모른 채 연속해서 터지는 비슷한 사고들도 실은 애초에 있던 설계상의 결함이 시간이 가면서 표면화된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임기를 1년 반이나 남긴 참여정부에서 인사 파동과 당정 갈등, 비리 의혹, 경기 침체 등 갖가지 문제가 동시 다발적으로 불거지는 것은 전형적인 '코멧 유형의 고장'처럼 보인다. 개혁의 기치를 앞세우고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어설프게 설계한 개혁 프로그램의 후유증이 3년여 만에 표면화하는 것은 아닐까. 무리한 정책이 반복되면서 빚어진 개혁 피로 증상과 날 서고 각진 말투가 가속화시킨 국민 분열상마저 어쩌면 그렇게 코멧 비행기 사고와 닮았는지.

비행기 사고라면 운항을 정지하고, 원인을 규명한 뒤 설계를 보완할 수 있다지만, 고장 난 정부는 그럴 수 없으니 난감하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