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된 공간 소화기 하난 안 갖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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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4명이 어이없게 떼죽음 당한 경북 달성군 논공단지 무허가 카페 화재 사고는 연말의 들뜬 분위기와 가연성 물질로 범벅이 된 실내장식 등 화재에 대한 완전 무방비 상태가 빚어낸 참사였다.
연말 단합대회와 간담회를 정해 술을 마시던 근로자들은 간이소화기 하나 갖춰놓지 않은 카페에서 불길이 치솟자 대피소를 찾았으나 출입구가 한군데밖에 없는데다 불길이 삽시간에 홀안 전체에 번지는 바람에 고스란히 떼죽음을 당해야했다.
24평 짜리 카페 홀은 테이블·카핏·커튼 등 유독성 인화물질들이 불에 타다 남은채 어지러이 흩어져 있어 참사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한눈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다.
다시 말해 이번 대형참사는 한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정도의 비좁은 출입구가 하나 뿐인데다 비상시 고객들이 탈출에 이용할 비상구가 설치돼있지 않았으며 홀 내부 역시 룸 칸막이는 합판, 바닥은 인화성이 강한 카핏으로 깔려있어 불만 닿으면 순식간에 홀 전체로 옮겨 붙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특히 화재가 발생한 건물은 룸 쪽에 창문1개와 주방 쪽에 창문 2개가 있었으나 모두 장식물로 활용(?), 문을 봉쇄해 버렸고 석유난로를 사용하면서도 홀에 소화기마저 준비해놓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가 된 명진카페 건물은 지난해부터 수 차례 술집주인이 바뀌면서 무허가로 술집을 경영해왔는데 사고를 낸 업주 김씨도 지난달 초순부터 허가도 없이 술집 간판까지 버젓이 내걸고 공단근로자들을 상대로 여자접대부 3명까지 고용, 영업을 해오다 참사를 불러들였다. 군은 그동안 두 차례 경찰에 형식적인 고발조치만 했을 뿐 그대로 방치,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주민 조상석씨(42)는『이 업소와 같은 무허가 업소가 논공공단내에 17개 업소나 난립해 접대부까지 두고 주택가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데도 관계기관에서 이를 방치해 두고 있는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망자의 사체가 안치된 대구 의료원과 경북대 병원·가톨릭 병원 등의 영안실에서는 화재참사 소식을 듣고 찾아온 가족들과 논공공단 근로자들이『이런 어처구니없는 참변이 어떻게 일어날수 있느냐』며 울부짖었다.
가족들은 28일 새벽 늦게까지 이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자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공단파출소와 병원 영안실을 번갈아 생사를 알아보다 참사를 확인하고는 업주 측의 화재무방비·관계기관의 형식적인 단속 등을 지적하며 땅을 치기도 했다.
경찰수사에 따르면 카페 출입구에 설치된 이동식 석유난로를 숨진 종업원 정실용씨(29) 가 발로 벽쪽으로 밀다가 난로가 넘어지면서 불이 난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 종업원들의 난로 등 화기에 대한 취급부주의 문제도 새롭게 제기되기도 했다.
한편 문제의 건물은 24평형의 콘크리트 슬라브 단층 건물로 지난해부터 무허가 술집에 임대해 주면서도 가게건물 주인(엄수호·64)이 건물 화재보험을 들지 않은데다 카페주인 김상업씨(29)도 보상능력이 없어 사망자 보상마저 어려운 실정이다.
이번에 참변을 당한 세운산업 근로자들은 자동차 부품을 조립, 논공공단내 대우 자동차부품 공장에 납품해왔다.【대구=김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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