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자사고 설립 탄력 받을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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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울산과 제주를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에서 제5대 교육위원 선거가 실시됐다. 교육위원은 '교육계의 국회의원'이라 불릴 정도로 시.도 교육청의 교육정책 수립에 영향을 준다.

서울은 교육위원 15명 중 전교조 출신 당선자가 2명뿐이다. 한국교총은 11명이 당선됐다.

전교조가 쇠퇴하고 교총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교육위원의 보수성향이 뚜렷해진 것이다. 따라서 전교조의 목소리가 약해지고 평준화보다는 수월성 교육정책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국제중학교 설립 탄력 받을 듯
= 특성화 학교인 국제중 설립 동의안은 그동안 서울시 교육위에 상정됐으나 전교조의 반대로 난항을 겪어왔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사교육 열풍을 우려하며 국제중 설립을 반대해왔다. 제4대 서울시 교육위원 15명 중 7명이 전교조 출신으로 전교조의 목소리가 컸다.

이번 선거결과 전교조가 밤샘농성까지 하며 반대했던 국제중 설립이 변화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중 설립 동의안은 9월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새 교육위원들에게로 공이 넘어갔다. 서울시 교육청은 그동안 반대 여론에 밀려 주춤하던 국제중 설립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중은 교육감이 교육위의 동의를 얻어 설립한다.

이번 선거에 당선된 서울시 교육위원들은 상당수가 국제중 설립에 적극적이다.

나영수 위원(제2선거구, 은평.서대문.마포)은"서울이 영재고를 둔 부산보다 뒤처지고 있다. 초등 영재들이 갈 곳이 없다. 기러기 아빠를 계속 양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스스로 교육을 선택할 권리가 교육소비자들에게도 있다"며 "국제중 설립이 매우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인종 위원(제3선거구, 성동.광진.동대문)은"내 지역구에서 대원중을 국제중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약했다.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교육평준화만 부르짖다 보면 국가경쟁력 위기를 초래한다. 영재에겐 그에 걸맞은 교육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국가발전의 초석"이라고 강조했다.

강호붕 위원(제5선거구, 양천.강서.금천.구로)도 "국제중은 영재교육이란 측면에서 꼭 필요하다"며 "유럽과 일본의 경우 그런 사례가 많다. 국제중만이 아니라 과학중까지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 교육청은 다소 신중한 입장이다.

이준순 중등교육정책과장은"국제중은 서울시가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지만 현재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라며 "교육감이 이미 설립하겠다고 밝힌 사안으로 갈등을 최소화하는 지점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장은 앞으로의 교육정책과 관련, "제4기 때는 15명 중 전교조 측이 7명이어서 나머지 8명이 뭉쳐 정책추진 방향을 쉽게 가늠할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이번에는 다수가 비 전교조측 인사일 뿐 각양각색이고 자기철학이 있는 위원들이어서 오히려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 교육청에 따르면 대원학원(대원외고 재단)과 영훈학원(영훈초 재단)이 '대원국제중'과 '영훈국제중'의 설립 인가신청서를 내놓고 있다.

이들 학교는 각각 두 학급씩을 만들어 국어.국사를 제외한 전 과목을 영어로 가르칠 계획이다. 이들 학교는 인가가 날 경우 민사고나 외국어고에 입학할 수 있는 아이들을 선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문을 연 가평의 청심중학교는 입학경쟁률이 21대 1이었다.

◆"자립형사립고 수요도 충족시켜야"
= 자립형사립고도 다양한 교육 수요를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나영수 위원은 "학생등급화.서열화를 거론하며 반대하는 세력이 있지만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다양성 없는 교육이 문제"라며 "수준별.능력별 수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 위원은"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의 기회를 줄 의무도 있다. 외국유학의 길로 가도록 방치하는 것보다 교육체제의 다양화를 통해 국내에서 그런 수요를 충족시켜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인종 위원도 "국가경쟁력 확보라는 차원에서 당연히 자립형사립고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호붕 위원은 우선 특목고부터 현재 수를 2배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위원은 "전체의 20~30%의 학생이 높은 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학교의 틀 속에 있어야 한다. 과거 서울인구가 100만~200만이던 시절에 일류 고교가 10곳이었다"며 "1000만 명인 수도권을 염두에 둔다면 특목고를 더 확대한다고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미 은평.길음 뉴타운 2곳에 자립형사립고를 설립.운영할 학교법인을 모집하고 서울시 교육청과 협의를 거쳐 관련 절차를 밟아 나갈 계획이다.

이준순 과장은"자립형사립고는 교육부의 인가 사안으로 하반기에 들면 국제중과 자사고 모두 논의가 급진전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신중론을 펴는 의견도 있다.

구본순 위원(제2선거구)은 "자립형사립고는 필요하긴 하지만 시기상조다.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립형사립고는 학생선발과 등록금 책정, 교과과정 운영 등이 자유롭다. 대신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지 않는다. 평준화의 문제점을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각광받고 있다. 2002년부터 민족사관고.상산고.현대청운고.포항제철고.광양제철고.해운대고 등 6개 학교가 시범운영중이다.

교육계 국회의원… 주요사항 심의·의결

이번 교육위원 선거는 예전과 달리 전교조.한국교총 등 교육 단체를 비롯해 사학재단들도 후보를 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교육위원은 교육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기 때문에 교육위원 배출 여부가 교육단체의 향후 활동.위상에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교육에 대한 계층의 요구가 다양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서울시는 15명 선출에 36명이 출마해 2.4대 1을 기록했다. 이는 제4대(3.26대 1)보다 크게 낮은 것이다.

전교조는 전국적으로 전체 53개 선거구(132명 선출)에서 41명의 후보를 냈지만 14명 당선에 그쳤다.

2002년 제4대 교육위원 선거에서는 전교조가 전국적으로 35명을 내 24명을 당선시켰다.

전교조가 패한 이유로 교원평가 반대, 성과급 반대, 색깔 논쟁에 대해 학부모들이 등을 돌렸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교육위원은 해당 시도의 교육과 관련된 주요 사항을 심의 의결하고, 교육청의 행정사무에 대한 감사권을 갖는다. 교육위원 선거는 교육의 풀뿌리 자치를 위해 1991년부터 시작됐다.

이들은 국제중학교.자립형 사립고 설립 등에 관한 사항을 의결하고 예산안을 심의한다. 해당 지역의 교육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것이다.

임기는 4년으로, 제5대 교육위원의 임기는 2006년 9월1일~2010년 8월31일이다. 올해부터 교육위원이 유급화돼 연간 5000만원 내외의 의정비를 받는다.

다음 6대 교육위원 선거부터는 주민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할 가능성이 크다.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육위원 선거가 갈수록 불법.탈법 등으로 혼탁해지자 9월 정기 국회에서 주민 직선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반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해진 제5대 교육위원들이 학력신장 위주의 교육 정책을 확산시킬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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