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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의 스타 데이트] '개그맨·공연기획자·라디오 DJ 전유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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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혹은 아주 특별한(좋은 뜻에서) 사람. 개그맨 전유성(54)에 대한 평가는 두 갈래로 엇갈린다. 왜 그럴까.

지난 4일 나는 오전 3시에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전날밤 10시30분부터 정동극장에서 연극 '이(爾)'를 보고 나서 극장을 나온 게 오전 1시였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시대 연산군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던 '코미디언' 공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린 연극. 2000년 초연 때 이 연극을 보고 열성팬이 된 전유성이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한회 분의 티켓을 모두 사서 오밤중에 공연을 기획한 것이다. 그는 기인인가, 특별한가.

언젠가 전유성은 어린이가 떠들어도 주최측이 절대 화내지 않는 음악회 '얌모얌모 콘서트'를 기획한 적이 있다.

"우리는 항상 '아이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네''임신중에 태교하려면 모차르트 음악이 좋네' 하잖아. 그러면서 정작 아이들을 데리고 구경갈 만한 음악회엔 전부 나이 제한이 있어. '7세 미만은 사절합니다' 등등. 난 그게 아이러니라고 생각해. 어른보다도 아이들이 더 많이 음악을 듣고 자라야 하는 거 아냐?" 이런 생각 때문에 그는 아이들이 떠들어도 공연자들이 끄떡않고 연주하는 음악회를 기획했다.

이 음악회에서 성악가는 아이들의 지저귐에 상관않고 노래했다. 한 소프라노는 아예 드레스 차림에 아기를 업고 나오기도 했다. '잘자라 우리 아가~' 성악가가 노래를 하는 동안 카메라는 아기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관객에게 보여줬다. 정말 자장가를 부르면 아기가 편안히 잠드는 건지 알아보기 위해서 말이다. 전유성, 그는 기인인가, 특별한가.

이번 기사를 위해 얼마전 전유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전화가 왔다. 갑자기 그가 언성을 높였다. "나는 인터뷰할 때 꼭 인터뷰료를 받습니다, 제가 이쪽에서 제일 선배이기 때문에 선례를 남기려고 그러는 거예요. …아니죠. 어떤 연예인에게도 돈을 준 적이 없다고 해서 저까지 받지 말라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왜 웃으세요? 저 전화를 끊고 싶네요. 인터뷰료를 달라는데 전화에 대고 웃으시는 건 또 뭡니까?… 얼마를 원하냐구요? 거기 지금 몇회 특집입니까? 1백회 특집이요? 그럼 백원만 주세요. 그냥 PD 주머니에서 꺼내주지 말고 영수증 처리하고 회사에서 정식으로 주세요. 백원은 아마 세금 한푼 안내도 될 거예요. 예! 내일 방송국에서 뵙죠." 전화를 걸어온 PD도 웃고, 옆에서 듣던 나도 웃었다. 오직 전유성 혼자서만 진지했다. 그는 기인인가, 특별한가.

코미디 전문 극단인 '코미디 시장'을 운영 중인 그는 내년에 공연할 '마술 춘향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여태까지 공연된 춘향전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이몽룡 엄마를 출연시키겠단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한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몽룡 엄마가 뛰어들어가 이불을 들추면 방자와 향단이로 바뀌기 때문에 제목이 '마술 춘향전'이라나.

제대로 된 코미디 연극을 해보겠다며 전유성은 천만원의 고료를 내걸고 극본 공모까지 할 태세다. 방송국에서 몇 천만원씩 걸고 드라마 공모는 끊임없이 하면서도 코미디에 대한 투자는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생각에 그가 생돈을 들여 하는 일이다. 좋은 코미디 작가를 발굴해 좋은 코미디 연극 하나 올리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 때문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토록 일 벌이길 좋아하는 전유성은 평소엔 뭘 하며 지낼까. 돌아다니고, 공상하고, 책 보고, 퍼즐 풀고, 포토숍 배우고 …뭐 희한한 걸 발명할까, 매일 뭐하면서 안 심심하게 지낼까 궁리하며 산단다.

몇년 전엔가 그가 지리산에서 서울까지 몇십일을 걸어온 뒤 나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다. "나 지금 지리산에서 걸어서 막 도착했다" "아니 왜 지리산에서 여기까지 걸어서 와요 ?" "야! 너 보고 싶어서 지금 막 부산에서 비행기 타고 40여분 만에 왔다 하는 거 하구, 나 너 보고 싶어서 지리산에서 15박16일을 걸어왔다 하는 거 하구 어떤 게 더 감동스럽냐? 이유는 그거야"

하지만 내게 정말 감동을 주는 건 가수 진미령씨와의 부부생활이다. 그 두 사람은 이른바 '계약결혼'을 했다며 항상 긴장한 채 살고 있다. 5년씩 계약기한을 정해놓은 뒤 계약을 연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잘 보이려고 노력하며 산단다.

물론 계약이란 어감이 썩 좋지만은 않지만 부부끼리 항상 서로를 위해 노력한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 싶다. 또 한가지 부러운 점은 그들이 아마도 얼마 후엔 안식년을 1년 정도 갖게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1년간 부부 생활을 휴식한 뒤 다시 합쳐 재미있게 살겠다나.

이 부부에겐 아직 집도 없다. 집을 사서 깔고 앉아 있는 대신 그 돈으로 여행다니며 재밌게 살겠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전유성' 하면 여행을 많이 다닐 것 같은 사람이라고들 하던데 실은 미령이가 더 많이 다녀. 지난번엔 저녁 때 하도 안들어오길래 전화를 걸었더니 '나 지금 사이판 가는 길이야~' 이러더라니까." 이래저래 참 특별한 부부 아닌가.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전유성은…=1969년 데뷔 이후 코미디언과 개그맨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준 '원조 개그맨'으로 통한다. KBS '폭소대작전''유머1번지' 등 숱한 프로그램에서 독특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웃음을 선사한 그는 2001년 11월엔 코미디 전문극단 '코미디 시장'을 결성, 연극을 통한 웃음이라는 새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MBC 라디오 '여성시대 전유성.양희은입니다'를 진행 중이며, 오는 20일부터는 같은 방송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로 자리를 옮긴다.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하지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그는 중앙일보 창간 때 '배달소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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