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주자들의 가을 준비 ⑤ 이명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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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부산으로 내려가는 KTX 옆좌석의 그는 여느 때처럼 격정적이었다. "이건 단순한 대선 공약이 아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4만 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해야 하는 일이다. 역사는 행동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뤄진다. 부정적인 사고로 역사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땡볕 더위와 태풍 예보가 교차하는 올여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내륙 운하에 푹 빠져 있었다.

내륙 운하. 이 전 시장이 내민 회심의 카드다. 그는 10년 전인 1996년 7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의 머릿속 구상은 그보다 여러 해 전이라고 한다.

"낙동강과 한강을 잇고 호남에도 운하를 만들고, 훗날엔 평양과 신의주까지 연결할 것이다. 물류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연인원 380만 명의 일자리가 생기고, 내륙지방이 개발돼 유람선이 떠다닐 거다. 상상해 보라. 대한민국 전체가 신이 나서 꿈틀대고 바빠질 거다."

낙동강 하구의 부산 을숙도를 시작으로 밀양.창녕.고령.대구.구미.상주.문경.괴산.충주.여주.남양주.팔당.서울.파주를 잇는 3박4일간의 내륙운하 1차 탐사 일정을 그는 20일 마쳤다.

창녕의 마을회관에서 보냈던 첫날밤엔 3평 남짓한 방에서 일행 7명과 칼잠을 잤다. 코를 심하게 고는 측근들 때문에 이 전 시장은 잠을 한 시간밖에 못 잤다고 했다.

다음날 상주에선 비가 후드득 떨어지고 덤프트럭의 소음이 귀를 쩡쩡 울리는 텐트 속에서 1박을 했다. 대구와 상주에선 해병 전우회가 제공한 고무보트를 타고 낙동강의 수심과 유속을 직접 점검했다.

탐사 작업이 이뤄진 대구시 달성군은 라이벌 박근혜 전 대표의 지역구다.

"박 전 대표요? 쉰다고 해도 나라 걱정 많이 할 거다. 내가 이렇다 저렇다 할 이야기는 아니고…." 박 전 대표에 관한 질문이 나오면 그는 말을 아낀다.

그는 대신 "난 일생 동안 실물경제를 공부한 사람이다. 지도자는 가장 많은 고민과 경험을 한 사람이어야 한다. 꿈같은 일도 임자를 잘 만나면 다 이뤄질 수 있다"며 자신의 강점을 부각한다.

현장의 이명박은 누구와도 쉽게 친해진다. 애드리브에도 강하다.

텐트를 치고 잔 상주시 함창읍의 식당 아줌마가 "시장님, 제발 눈 좀 크게 뜨고 이야기해요"라며 그의 작은 눈을 트집 잡자 "이 아줌마, 참 모르는 말씀하시네. 탤런트 유인촌씨와 함께 다녀도 남들은 내가 더 잘생겼다고 하던데…"라고 받아넘겼다. 지난달 평창 수해복구 현장에선 밭길에서 소변을 몰래 보다 기자들에게 들키자 "제발 명상에 잠긴 걸로 해 달라"며 좌중을 웃긴 그다.

각종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선두권의 이 전 시장이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시와 지식인층에서의 높은 지지율에 비해 농어촌과 장년층 지지율은 상대적으로 낮다.

특히 지난달 수해복구에 나섰던 평창지역의 식당 주인이 이 전 시장의 측근인 정태근 전 정무부시장에게 '당신이 이명박이냐'고 물었던 일화는 이 전 시장 캠프에 '평창의 굴욕'으로 남아 있다. 그의 지명도가 박근혜 전 대표에 못 미친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낙후지역을 주로 통과하는 내륙 운하 사업이 이런 약점을 보완해 줄 것이란 게 측근들의 기대다.

각종 음해성 루머도 그를 괴롭히고 있다. 멀쩡하게 군대에 다녀온 외아들의 병역 기피 소문이 퍼지고, 숨겨 놓은 여자와 아들이 있느니 하다 최근엔 그가 노무현 대통령과 연대할 것이란 괴소문까지 돌았다.

그는 "'뭐가 있다 카더라' '이명박은 한 방에 보낼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오죽 없었으면 무혐의로 결론난 황제 테니스를 의혹이라고 이야기했겠나. 너무 고약하게 나오면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숨겨 놓은 여자가 런던에도 있고, 뉴욕에도 있고, 심지어 북한에도 있다고 들었다. 참 황당하다"며 혀를 찼다.

작은 흠도 잡히지 않기 위해 주변 관리에 철저한 편이다.

정책 탐사를 위해 최근 마련한 승합차 좌석이 불편해 뒷좌석을 개조할까 했지만 운전기사의 반대에 부닥쳐 뜻을 접었다고 한다. 평소 말이 없어 '침묵리우스'로 불리던 운전기사가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안 됩니다"라고 단칼에 일축했다는 것이다.

병역 면제 헛소문이 퍼졌던 외아들은 "아빠 옆에 나타나는 게 도움이 안 된다"며 100m 이내엔 접근조차 꺼린다는 게 부인 김윤옥씨의 이야기다. 이미지보다 콘텐트와 정책으로 승부하겠다는 이 전 시장의 일정표엔 9월 초 호남지역 방문이, 9월 말엔 테마별 해외 순방 계획이 잡혀 있다. 여름보다 가을을 더 뜨겁게 보내겠다는 게 그의 다짐이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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