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64. 인재를 찾아서 (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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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 20일 뇌과학연구소 개소식에서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는 필자.

현대의학 발전과 의료계 변화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 그래서 나는 가천의대.길병원 연구진의 실력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그 인재들이 첨단의학 연구에 정진할 수 있는 시설 확보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새싹을 발굴, 인재로 키우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인재 양성은 묘목에 물과 비료를 줘 거목으로 키우는 것과 같다. 새싹이 거목으로 우뚝 서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나는 묘목을 가꾸고 돌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거목이 된 인재가 더욱 빛나는 업적을 남기도록 지원하는 게 더 소중하다고 믿는다.

나는 국내외 의료계 인사들과 만나면 늘 인재에 대해 얘기하고, 세계적인 석학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하곤 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석학을 많이 영입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뇌과학 분야 세계적 석학인 조장희 박사를 영입한 건 인재 발굴.지원을 통한 가천의대와 길병원의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내 꿈과 맞닿아 있다. 나는 미국으로 가 당시 캘리포니아대(어바인)에 재직하던 조 박사를 만났다. 그리고는 "나와 함께 뇌과학 분야의 질병 정복에 한번 나서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열정적으로 설득했건만 조 박사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귀국해서도 조 박사에게 "당신의 조국에서 그 뜻을 이뤘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수차례 전달했다. 조 박사는 "제 연구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 지원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어왔다.

그래서 나는 600여 억원을 들여 인천시 구월동 길병원 맞은편에 뇌과학연구소를 지었다. 이 연구소는 세계적 의료장비 회사인 독일의 지멘스 메디컬과 투자협력 협정을, 미국 하버드대 뇌영상센터와 공동연구협력 협정을 각각 맺었다. 최첨단 장비와 우수 연구인력을 교류하기 위해서였다.

뇌과학연구소는 올 4월 20일 문을 열었다. 조 박사는 이곳에서 세계 최초로 '양전자단층촬영장치(PET)와 자기공명영상장치(MRI)의 퓨전영상시스템'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퓨전영상시스템이란 PET와 MRI의 장점만을 합친 영상기기다. 조 박사의 연구 목표는 치매.중풍.뇌종양 등 각종 뇌질환을 발병 전에 진단할 수 있는 '꿈의 영상기기'개발이다.

나는 국가가 의료복지 실현과 첨단의학 연구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앞장서고, 대학과 병원은 '연구 인재'를 키워 한국의료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데 온힘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한 명의 인재가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뇌과학연구소와 함께 암센터.당뇨센터.아토피센터가 들어서는 19층 규모의 아카데미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또 인천 송도경제자유구역 안에 '동북아시아 의료 허브' 역할을 할 생명과학연구소를 짓고 있다. 나의 중장기 목표는 병원과 의대.연구소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세계적 의학단지 조성이다.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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