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드는 미·일 안보조약 무용론 일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몰타 미소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 이후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는 그동안 터부시되어온 미일 안보조약 폐기론이 고개를 들고있어 관심거리가 되고있다. 『동서냉전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미일 안보조약 부요논자들의 주장은 이제 핵우산도, 주일 미군에 의한 안보 무임승차론도 경제대국 일본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니 하루빨리 벗어 던져야 한다는 논리가 골자를 이루고있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동경대교양학부 아사이 모토후미교수(천정기문·48).1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외무성 중국 과장직을 맡고있던 엘리트 외교관으로「미일안보견지」를 금과옥조처럼 외치는 의무성안에서는 이색적인 존재였다.
아사이 교수는 최근 언론의 각광을 많이 받는 편으로, 뉴스위크지의 인터뷰기사에서도『일본은 미국과의 안보조약을 폐기해야 한다』는 등 지론을 폈다.
몰타 정상회담으로 동서간의 긴장완화가 진전될 것이라는데 동의하는 그는 소련의 「신사고 외교」가 어디까지나 소련내의 경제 위기 퇴치 우선론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본다.
따라서 소련은 군사비를 돌려 경제 재건에 총력을 기물일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중국 또한 대외 개방정책을 지속할 젓으로 예상한다.
이처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소련과 중국의 위협이 사라져 가는데 냉전구조의 산물인 미일 안보조약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그는 단언한다.
아사이 교수의 미일 안보조약 무용론은 소련·중국에 대한「종이 호방이」인식과 함께 미국 또한 과거의 미국이 아니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는『미일관계는 군사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경제를 기본으로 한 더욱 안정된 관계가 되어야하며 그 첫걸음이 안보조약의 폐기』라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그의 안보조약 폐기 주장에는 최근 소·동구권의 변혁움직임과 함께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자기 주장을 할만큼 성인국가가 되었다는 자신감이 배경을 이루고 있음을 알수 있다.
사실 그의 주장은 일본내 상당한 지식층의 저류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사이 교수의 안보조약 무용론과 같은 의견은 다쿠보 다마에(전구보충위) 행림대 교수도 갖고있다.
90년 1월호 중앙공론에서 다쿠보 교수는『미일 동맹을 재고해야할 때』라는 단평속에 이같은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는 이에 앞서『제군』10월 호에 실은 논문에 대한 한학자의 비판을 인용하면서『미일 동맹이 미래에 대해 갖고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신의 뜻을 재확인했다.
『나는 미일 동맹이 미래에 대해 갖는 커다란 잠재적 가능성을 결코 무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21세기에 닥쳐올 국제정세의 변화가 미일동맹에 전혀 무관하리라고 생각할 수 없다.
미일 관계가 파국에 이르렀다고까지 말할 비관론자는 없지만 이같은 현상이 미일 동맹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전제한 뒤 아사이 교수와 마찬가지로 소련이 북동 아시아 지역에서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미국이 인정한 이상 미일 안보조약의 제일 중요한 측면인 군사적 동맹관계의 재고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사이교수의 논조와 비교할 때 다쿠보 교수의 안보 재고론은 실리적 탈미주의라기 보다 이시하라 신타로(석원신대낭) 유의 감정적 반미주의에 더 가깝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44년 전 히로시마 원폭이 왜 일어났는지, 일본 패전 후 미 점령군은 어떤 연유로 일본재건에 나섰는지, 6·25전쟁 때 일본은 한국전 특수로 얼마만큼 재미를 볼 수 있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고려는 결여하고 있다.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 여타 국가의 생존은 안중에도 없다.
무서우리만치 현실에 투철한 실리적 탈미주의라고 할만하다.
미국 지식인들의 심리를 자극시킨 이시하라 신타로와 모리타 아키오(성전소부)의 책『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속에 나타난 주장이 감정적 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본다면 사실 미국의 더욱 큰 강적은 자신감을 잘 포장하고 있는 일본의 탈미주의 쪽인지도 모른다.
【동경=방인철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