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앰~새앰~샘이 나서 샘표 간장 52년 만에 굿바이 '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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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표가 CI(기업 이미지 통합)로 반세기 넘게 써 온'泉(샘 천)'자를 버리고 새 얼굴을 드러낸다.

이 회사는 창립 60주년을 맞아 '제2의 도약'을 선포하면서 새로운 CI를 도입한다고 18일 발표했다. 새 CI는 종전 육각형 모양과 붉은 색상을 유지하되 상표는 한글로만 표기하기로 했다. 샘표는 1954년 이후 '泉'자를 CI로 써 왔다. 일본인 소유의 삼시장유 양조장을 고 박규회 창업주가 광복 직후인 46년 미 군정에서 인수한 뒤 직접 상표와 CI를 만들었다. 그러다 90년 한차례 CI 교체작업을 했지만 글자 모양만 바꿨을 뿐 '泉'자는 그대로 뒀다.

◆ 간장도 글로벌화=샘표는 76년 창업주의 아들인 박승복 현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았고 97년부터 손자 박진선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90년에 CI 첫 교체작업을 할 때만 해도 샘표의 트레이드 마크인 '泉'자를 버린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그러다 90년대 후반 미국.러시아 등에 수출을 본격화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간장.된장.고추장 같은 가장 '한국적'인 제품을 파는 회사인데도 불구하고 현지 소비자들은 한자로 된 상표 탓에 샘표를 중국업체로 오인하기 일쑤였다. 창사 60돌을 맞아 CI 교체를 계획했던 박 사장이 고심 끝에 '泉'자를 과감히 포기하기로 한 연유다.

1년 넘게 CI 전문회사와 국민대 테크노디자인학과 대학원생들이 머리를 맞대 3700여 점의 시안을 만들었다 지웠다 하는 진통을 거듭했다. 몇 가지 후보를 놓고 임원과 여러 부서의 직원 3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격론을 벌인 끝에 CI를 최종 낙점했다. 새 CI가 들어간 제품은 10월께 출시된다. 박 사장은 창립 기념사에서 "수십년간 고객들의 머리에 박혀 너무도 익숙한 CI를 바꾸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며 "그러나 회사 이미지를 바꾸고 변화를 가져오는 게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 한자 CI 역사 속으로= 한자 CI를 쓰는 기업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최근까지 '韓進海運'이라는 한자 상호를 써온 한진그룹은 3년 전 '한진해운'이라는 한글 CI를 새로 만들었다. 1980년대만 해도 커피 제품 등에 '東西食品'이라는 한문 CI를 표시했던 동서식품도 90년대부터는 한글 표기를 기본으로 삼았다.

다만 기업 CI가 아닌 제품 브랜드명에는 한자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진로의 소주제품 '참眞 이슬露'나 '삼성 來美安(래미안)''롯데 樂天臺(낙천대)'같은 아파트 이름이 그것이다. CI 업체인 디자인파크의 김현 대표는 "10여 년 전만 해도 한자 CI를 당연시했던 기업들이 대부분 한글 CI로 교체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글 서체 디자인이 다양하고 세련되게 발전한 데다 한글 CI가 세계시장에서 글로벌한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진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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