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역 기업 107곳 부도 위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18일 포항종합운동장 앞 광장에서 열린 '불법폭력 규탄 및 포항 경제 살리기 범시민 궐기대회'에 참가한 3만 명의 사회단체 회원, 상인, 시민들이 포항 경제를 황폐화하는 불법 시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포항=조문규 기자

"회사가 망해 일터가 없어지면 노조원은 어디 가서 일합니까. 도대체 누굴 위한 파업인지 모르겠습니다."

포항에서 전기시설 업체인 대웅기전을 운영하는 진명주(47) 사장은 18일 전문건설노조가 파업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달 내야 할 2분기 부가가치세 7000만원을 마련하지 못해 세무서에 한 달간 납부 연기를 요청한 상태다. 정규직원 10여 명 외에 일용직 72명을 고용해 포스코 3개 현장에서 공사를 하며 한 달 평균 3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지난달 수입이 뚝 끊겼다. 건설노조에 소속된 일용직원들이 파업에 참여하면서 일손을 놓았기 때문이다. 다음달 15일 지급해야 할 직원 인건비.관리비 등 고정비용 3200여만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같다. 진 사장은 "파업이 계속되면 다음달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건설노조의 파업이 18일로 50일째 계속되면서 포항지역 전문건설업체 300여 개 가운데 107개가 부도 위기에 놓여 있다. 이들 기업은 원청업체인 포스코건설의 하도급을 받아 파이넥스 공장 건설현장 등 포스코 안의 24개 공장.설비현장에서 기계.전기.토목 등의 공사를 하면서 공사 실적에 따라 매달 10일 공사대금을 받아왔다. 6월에 306억원, 7월에 204억원 등 평균 250억원을 포스코건설에서 받았다.

그러나 파업으로 7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면서 이번 달에는 한푼도 받지 못했다. 이들 업체는 포스코가 발주하는 공사만 하고 있어 공사를 재개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기계철거.설치업체인 세일엔지니어링도 사정이 비슷하다. 15일 직원 월급 1억6000만원은 가까스로 지급했으나 자재.물품.장비대여료 등 2억5000만원은 거래업체에 사정해 한 달간 미뤘다. 이 회사 오세현(52) 사장은 "월 8억~9억원씩 들어오던 돈이 갑자기 끊겨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업체는 사장의 개인 돈이나 대출을 받아 마련한 돈으로 급한 대로 변통하고 있다"며 "감원이나 폐업을 고려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금이 끊기면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지 못해 가압류된 업체는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아니라고 한다.

건종ENC㈜ 이남규(55) 사장도 최근 납품업체에 자재.장비 대여료 등 8억원에 대해 지급 연기를 요청했다. 이 사장은 "포스코 공사만 맡고 있기 때문에 돈이 나올 다른 구멍이 없다"며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노조원들은 생계에 위협을 받고, 회사도 존립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업체와 노조원이 모두 살 수 있도록 노조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항상공회의소 조사부 배용조 과장은 "파업이 포항지역 경제 전반에 타격을 주고 있다"면서 "업체의 어려움을 파악해 자금 지원과 대출금 상환연기 등을 관계기관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포항=황선윤 기자<suyohwa@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