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불신 풍조가 숨은 불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개막벽두부터 조짐이 심상찮던 판정시비가 마침내 경기포기→몰수게임 사태로 비화됨으로써 출범7년째의 농구대잔치 코트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20일 삼성생명-한국 화장품 전에서 발생한 몰수게임 패 선언은 단순한 심판의 오심(오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현 심판진에 대한 팀 관계자들의 뿌리깊은 불신의 표출이라는게 농구계의 지배적인 분위기다.
몸싸움이 불가피한 농구경기는 다른 종목과는 달리 판정시비가 잦을 수밖에 없고 실제로 시시비비의 잡음 또한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심판의 자의적인 규정해석에 따른 편파 판정이 심심찮게 되풀이되고 있다는 데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찾게된다.
더욱이 최근 들어 공공연한 심판진의 금품수수설 등은 농구계에 이같은 불신풍조를 부채질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는『이들에게 정기적으로 뒷돈을 대주는 심판 마피아 조직까지 암약하고 있다』는 루머마저 나돌 정도다.
이 때문에 팀 관계자들은 전적으로 심판진을 믿지 못하고 심판진은 심판진대로 책임전가에만 급급해하는 팀 관계자들이 못마땅하기만 한게 요즈음농구계의 속사정이다. 앙금처럼 남아있는 피해의식, 이로 인한 잦은 어필·항의 등도 이같은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다.
심판진들도 할말은 많다. 현 심판진은 국제심판을 포함, 총27명. 이중 대다수는 따로 직업이 없는 농구인 출신들이다. 이들이 받는 심판수당은 게임당 3만5천원으로 1주일에 네차례 심판을 맡는다해도 12만원에 불과한 실정.
별도의 교통비나 식대보조도 없다. 그러자니 자연 팀에 기대는 성향이 잦을 수밖에 없고 이러한 성향이 관례화되다시피 하고 있다는게 10년째 심판생활을 하고있는 한 중견 심판의 솔직한 고백이다.
이 때문에 한때 실업연맹에서 나서 이들에 대한 사례금을 정례화 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오히려 심판진의 콧대만 높여줄 뿐이라는 반대 여론에 부닥쳐 무산된 적이 있었다.
이들을 감독·통제하는 협회의 우유부단한 행정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같이 되풀이되는 구조적인 모순을 번연히 알면서도 이를 외면한채 피해당사자들만 나무라는 행정처리로 일관함으로써 오히려 방조한다는 비판을 면키 힘들게 됐다.
팀 관계자들 역시 책임이 있다.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한 나머지 무턱대고 항의만을 일삼는 자세는 반드시 시정돼야한다. 실사 심판 판정에 불만이 있다손 치더라도 선수단을 이끌고 퇴장해 버리는 몰염치한 행위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튼 농구계는 이를 계기로 뼈를 깎는 아픔으로 주위를 돌아봐야 할 것이라는게 뜻있는 농구인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전종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