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량을 뛰어넘다 신기원 연 80연대 한국|스포츠진흥책이 팬 관심 부채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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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서울올림픽 유치결정으로 한국스포츠계가 서서히 거대한 몸짓의 용트림을 시작할 무렵인 83년 10월초. KBS사장실 부속의 소회의 실에서는 획기적인 스포츠 진흥 안이 KBS실무자들에 의해「모양 갖추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한달 여에 걸쳐 원탁의자에 둘러앉아 머리 짜내기 작업에 골몰하기를 십 수 차례.
불과 서너 달전 민속씨름(83년4월14일), 슈퍼리그(축구대제전 83년5월8일)를 잇따라 출범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농구와 배구의 겨울철 시리즈를 탄생시키기 위한 세밀한 마스터플랜이 성안돼가고 있었다.
새로운 겨울실내스포츠로서 농구와 배구가 부활된 것은 이와 같이 당시 이원홍 KBS사장의 진두지휘에 의해 이뤄졌다.
이들 종목의 겨울시리즈 출범에 KBS측에서 적극성을 띄었던 것은 당시 올림픽유치에 따른 5공의 스포츠진흥시책에 편승한 것으로서 KBS의 1백% 주도 때문에 다분히 정략적이라는 성격을 부인하기 어려웠고 한때 체육계 안에서도 비난이 일기까지 했다.
어떻든 겨울스포츠의 출범이 KBS측의 개최경비일체 부담 속에 실현됨으로써 항상 재정난에 허덕이는 스포츠계로선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KBS는 이에 앞서 축구슈퍼리그를 출범시키면서 TV중계료 명목으로 축구협회에 3억원을 선뜻 내놓았고 이에 고무된 농구 , 배구 주경기단체는 겨울스포츠의 출범작업에 앞다퉈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KBS는 프로복싱, 씨름, 축구는 물론 겨울스포츠마저 주도권을 행사함으로써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로 군림했다.
당시 농구계에선 서성환(태평양화학회장)농구협회장 주도아래 황재구 전무, 이인표, 신동파 이사가 발벗고 나섰고 배구 계에선 김한수 전무, 이문경 이사가 참여해 KBS측과 물꼬를 트는데 한몫 단단히 거들었다.
당시 농구, 배구가 KBS측으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무려 1억 원씩으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점보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닻을 올린 농구는 그 해 12월3일 장충체육관에서 성대한 개막식과 함께3개월 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출전 팀은 남녀 12개 팀씩 열개팀.
출범 첫해는 모두 3차대회로 나뉘어 각각 우승팀을 가려낸 후 최종 챔피언 결정전을 치러 성인농구의 왕중왕을 가렸는데 현대전자 (남)와 코오롱(여)이 첫왕중왕의 영광을 안았다. 게임수도 50일간 총1백62게임이었다.
배구는 이보다 한달 후인 이듬해 1월14일 모두 2O개팀 (남10, 여10)이 참가한 가운데 개막, 3개월의 장정 끝에 고려증권(남), 미도파(여)가 첫 월계관의 영예를 누렸다.
이 기간동안 코트를 찾은 관중 수는 농구가 20만5천명에 2억9천6백만 원의 수입을 올렸고 배구는 16만7천명에 1억5천만 원을 거둬들여 당초 우려와는 달리 기대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첫 대회의 성공에 고무된 농구, 배구는 이후 해를 거듭하면서 보완을 거듭, 이제는 겨울스포츠의 총아로서 거의 자리를 굳혔다.
이들 종목의 겨울스포츠정착은 다른 종목에도「홀로 서기」의 새 비전을 제시해줬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서울올림픽 금, 은메달의 주역 핸드볼이「영광의 큰잔치」시리즈를 창설, 제3의 겨울스포츠로서 올해 의욕의 닻을 올렸고 곧 테니스, 탁구 등도 겨울프로그램을 상장, 새로운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이처럼 각종 실내구기종목의 탈 계절화는 국내스포츠의 저변과 수준을 선진형으로 대폭 개선하는데 결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 확실하며 그것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농구, 배구 두 종목 모두 해당 경기단체들의 창의력 부족과 안일로 당초KBS가 기획한 수준이상의 개선을 이루지 못한 채 타성에 젖은 대회의 반복에 머무르고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관중수가 창설원년을 피크로 오히려 감소돼 가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별표참조>
두 구기가 명실상부하게 확고부동한 겨울철 주요 이벤트로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선 해마다 새로운 변화가 꾀해져 팬들의 관심을 자극하도록 적극적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전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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