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변화기대 아직은 성급 - 일본 중견 북한연구가 이즈미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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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최근 소련 및 동구권의 급격한 민주화 변화가 저절로 북한의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한반도 주변정세가 긍정적으로 바뀌고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남북한 당사자의 노력에 의해서만 진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북한관계 학술대회에 참석차 방한중인 일본의 중견 북한연구가 이즈미 하지메(이두견 원) 정강현립대 교수는 북한의 변화가능성에 대해 비교적 회의적인 전망을 했다.
지난4월 북한을 첫 방문한데 이어 지난달 3일부터 10일까지 1주일동안 다시 북한을 방문했던 이즈미 교수는 동구권의 변화가 본격화되기 전인 86년부터 북한은 나름대로의 대응책을 마련해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방북시기가 공교롭게도 김일성의 중국방문과 일치한다. 김일성은 6일 하루만을 북경에서 온전히 머무를 수 있었던 셈인데 그렇게 짧은 방문을 중국의 5중전회 개막직전에 긴급하게 치른 이유는 무엇으로 보는가.
『북한은 중국에 대해서만 「대를 이어 선린관계를 유지하자」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번 5중전회에서 장쩌민(강택민) 중공당 총서기는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차지, 덩샤오핑(등소평)의 후계자로서 확고한 지위를 장악했다.
북한에서 강택민에 해당되는 것이 김정일이다.
따라서 김일성은 양국의 후계체제와 관련, 중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재확인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 만난 요인은 누구인가.
『조선사회과학자협회(회장 황장엽)의 초청을 받은 것으로 그쪽과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그 이상 밝힐 수 없다.』
―최근 동구권의 변화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북한은 그에 관한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도층이나 학자들은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더 객관적인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대응도 동구권의 공산당 1당체제의 다당제로의 전환이나 민주화추세를 그대로 인지하는데서 출발하고 있다.
북한지도층은 이같은 변화가 북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자체체제 안정문제 ▲북한사회에 미치는 충격 ▲통일문제에 대한 영향 등 세 가지 관점에서 분석, 대응하는 인상을 받았다.
어쨌든 북한은 완전폐쇄로 급격한 개방도 아닌 제한적·선택적 개방을 조심스럽게 추진해나갈 것으로 본다.』
―한국과 급속하게 관계를 개선하고 있는 소련의 변화는 충격이 크지 않은가.
『한마디로 북한은 한소관계가 영사관계에서 외교관계로, 그리고 한국의 유엔단독가입에 소련이 거부권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태를 예상해오고 있다.
북한은 그만큼 소련의 개혁작업을 저지할 수도, 대북양보를 얻어낼 수도 없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용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른 북한의 대응은 어떤 것인가.
『북한은 85년3월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등장, 이듬해 6월 신 베오그라드선언을 발표했을 무렵부터 이미 동구권의 개혁을 예상했던 것 같다.
북한은 86년 내부적으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하여」라는 테제를 채택, 87년에 그 일부를 공개했다. 이는 동구권의 변화에 한발 앞서 북한 독자의 노선을 강화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내부토론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년1월 김일성이 소련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이 있다. 그 가능성과 의미는.
『북한은 지금 소련의 양보를 얻어낼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체면을 손상하면서 김일성이 고르바초프를 찾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게 된다면 그것은 북한의 중요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될 것이다.』 <전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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