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개혁은 강력한 추진력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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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개혁추진은 전부냐 전무냐는 식의 양단간의 결과를 향한 도박처럼 보인다.
종전 고르바초프는 국제질서와 안정이라는 기본틀 속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모색해왔다. 그러나 소련은 이제 급진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의도적으로 촉진하고 있다.
소련은 동독·불가리아·체코공산당 지도부에 개혁압력을 가해 레니니즘을 포기토록 함으로써 사실상 동구를 혁명적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이같은 모험은 아직까지 경제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소련의 영향아래 놓여있는 동구에 변혁의 촉진제가 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동구의 개혁을 통해 소련의 개혁에 필요한 다이내미즘을 역으로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폴란드 공산당간부 한 사람의 말은 이같은 고르바초프의 의도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는 폴란드의 개혁은 폴란드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서구 때문에 가능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소련에 대해 똑같은 역할을 맡고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어 『소련의 노동력은 우리에 비해 훨씬 싸고 소련의 산업도 폴란드에 비해 원시적이다. 폴란드는 소련산업에 경영기술을 전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폴란드인의 설명이 전적으로 옳다고는 할수 없을지 모르나 소련이 자체경제를 세계경제규모로 현대화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는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소련은 아직까지 국제경제사회에 동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소련보다 오히려 헝가리·동독·폴란드·체코 등이 EC등 유럽 경제·정치체제에 참여하기가 상대적으로 더 쉬운 것이 사실이다.
소련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체제에 스스로 참여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소련의 개혁주의자들은 이같은 어려운 난제를 풀고 국제경제사회에 동참하는 것을 커다란 과제로 삼고 있다.
차르시대(제정러시아시대)의 소련은 1870년대부터 급속한 산업화과정에 들어갔으며 당시 러시아의 경제수준은 미국이나 유럽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 있었다.
러시아의 엘리트들은 그러나 1904년의 노일전쟁과 그후의 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 속에서 절망감에 사로잡혔으며 제정러시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같은 당시의 현상을 정치학자 조지 케넌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볼셰비키혁명은 「거대한 러시아의 국내 정치적 위기」속에서 나타난 「상황적 사건」이었다.』
냉전시대 미국의 대소정책 골격을 구축했던 케넌 교수는 이같은 제정러시아의 위기는 이반 황제의 사망과 함께 국내 파쟁에 이어 폴란드·스웨덴의 침공으로 대혼란을 겪었던 16세기이래 최대의 시련이었다고 진단한다.
그런데 제정러시아 말기 「위기의 시대」는 볼셰비키혁명 후 더욱 심화되고 있다.
소련은 이같은 위기의 시대가 가져다준 공포와 고통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고 있다.
소련 내에는 아직도 개혁에 반대하는 많은 요소가 남아있다.
계속 악화일로에 있는 국내 경제위기, 대안이 없는 쇠퇴일로의 중앙통제식 「지령경제」체제, 무질서, 각 공화국에서의 민족주의문제 등 갖가지 반개혁 요소들이 소련개혁주의 지도층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의 엘리트들은 이번 개혁노력에서 1904∼1907년 사이에 겪었던 절망이나 좌절을 딛고 이젠 의욕과 희망을 되찾고 있다.
이것은 인접 다른 동구공산당 지도자들이 처한 입장과는 극적일 만큼 서로 다른 것이다. 동독이나 체코의 공산당 지도자들은 현재 두려움 속에서 사기마저 잃고있다.
이들 동구 공산지도자들은 지금까지 미봉책인 억압책으로 일관하다가 타협의 시기를 놓쳤던 것이다.
소련의 개혁주의자들은 그러나 그들의 미래에 대해 확고한 자신감을 갖고있다.
그들은 반대세력을 제치면서 개혁을 향해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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