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의 상징」으로 "가택연금"|동독 호네커 전서기장 근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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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독공산정부가 거센 민주화물결에 휩쓸려 무너진 뒤 공산정권의 부패상이 쏟아져 나와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당간부들의 횡령·수뢰사건은 일반 국민들뿐만 아니라 당원들조차 경악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2개월 전까지만 해도 동독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었으나 지금은 가택연금상태인 호네커 전 서기장에 대한 불미스런 혐의도 점차 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주 네커 전 서기장과 8명의의 오랜 당 동지들이 권력남용혐의로 검찰에 의해 정식 기소되어 그중 7명이 구속됐다.
호네커는 건강상의 이유로 구속은 되지 않았으나 그것도 당분간일뿐 그의 재판회부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나타난 부패증거를 보면 세계적 수준의 「국가재산 약탈자」로 낙인찍힌 필리핀의 마르코스나 이란의 팔레비왕이 연상될 정도의 큰 규모다.
호네커는 당 고위관리들과 함께 동베를린의 반트리츠에 있는 호화주택가에 살면서 사치스런 생활을 해왔다.
더욱이 최근에는 그가 조류보호지역으로서 사람이 살지 않는 발트해연안의 작은 섬 빌름에 1백20만 달러 짜리 호화별장을 소유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동독경제를 좌지우지했던 정치국의 경제담당책임자인 귄타르 미타크와 대외무역 담당비서인 알렉산더 샤크골로드코스키는 호네커를 위해 수천만 달러 상당의 경화를 스위스은행으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외화유출의 통로였던 동독 상품교역사무소의 두 문자를 따 「KO-KO스캔들」로 불리는 이 사건은 불법적인 무기밀매와 예술품 및 그 밖의 문화재를 밀반출 해 도피 자금을 마련했다는 혐의를 더해주고 있다.
오랜 불황에 시달려온 동독인들에게 경화란 극히 귀한 예외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범죄에 더 큰 분노를 보이고 있다.
지금에 와서 특권생활에 대한 대가를 정치인들만이 치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체육계나 문화계의 거물로서 대부분의 동독인들이라면 꿈도 못 꿀 호화아파트와 고급승용차를 소유하면서 윤택한 생활을 해온 인물들도 따가운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동독인들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다고 공공연하게 내세워온 정부가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국가재산을 빼돌려 「부유한 자본가」의 생활을 흉내내 왔다는 점이다.
한편 동독정부는 호네커 전 동독공산당 서기장이 현재 살고 있는 호화저택을 장애자시설로 전환하는 계획에 따라 내년 2월까지 이를 비우도록 했다.
동독정부는 공산당의 중요 간부들이 집단으로 거주해오던 반트리츠지역을 1백 개의 병상을 갖춘 장애자 회복시설로 전환키로 하고 곧 구체적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동독의 국영여행사는 한때 호네커의 호화저택을 관광객들을 위한 호텔로 사용할 것을 검토, 이를 서독 함부르크여행사와 협의한 바 있다. 【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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