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0기KT배왕위전 : 이창호, 평생의 난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제40기KT배왕위전'

<도전 5번기 제3국>
○ . 왕 위 이창호 9단 ● . 도전자 이영구 5단

제2보(16~31)=이창호 9단의 마음 깊은 곳엔 언제나 풀리지 않는 난제 하나가 도사리고 있다. 바로 '두터움과 실리의 융화'다.

두터움은 바둑판의 미덕이며 이창호의 타고난 기질이고 또한 그의 소망이다. 하나 실리 또한 미워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게 부족하면 고통을 겪는다. 그런데 두터움과 실리는 마치 양극과 음극처럼 서로를 밀어낸다. 두터움과 실리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 그런 바둑의 경지는 인간으로선 영영 이룰 수 없는 것일까.

16으로 부딪쳐 22까지 축으로 잡았다. 귀의 실리를 내주고 두터움을 쌓았다. 23은 축머리, 24로 지켜야 한다. 흑은 어느덧 세 귀의 실리를 차지했다. 그동안 백은 느릿하게 좌변 일대에 머물러 있다. 어느 순간인가 흑의 빠른 발걸음에 강력한 태클을 걸지 못한다면 흑은 그대로 질주해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실리가 부족한 자는 항시 불안하다.

25가 이영구 5단에겐 중대한 기로였다. '중도'를 택한다면 '참고도' 흑 1로 두어 동태를 살피는 것이다. 백이 2로 귀를 차지한다면 흑 3으로 하변을 갈라친다. 귀 하나는 내줬지만 하변에서 꿈틀거리는 백의 대모양을 견제했기 때문에 아주 온건한 수법이라 할 수 있다.

실전의 25는 '극우' 아니면 '극좌'에 해당하는 수법이다. 백이 26으로 협공해 올 것은 필지의 사실인데도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다. 대신 27, 29, 31의 수법으로 또 하나의 귀마저 차지해 버리겠다고 선언한다. 하변과 좌변을 배경으로 중앙 일대까지 백의 거대한 세력이 형성되고 있지만 실리에서만은 확실히 우위에 서겠다고 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