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 업주 납세실적 0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사례 1=한 지방 도시에서 대형 사우나와 모텔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58)씨는 세금 계산의 근거가 될 만한 자료를 모조리 없앴다. 그리고 2003~2004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그러면서 최근 3~4년간 28회에 걸쳐 해외여행을 했고 25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샀다. 국세청은 세무조사에 들어갔지만 자료가 모두 없어져 소득을 추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돈의 흔적은 어디엔가 남아 있는 법. 국세청은 이씨가 운영하는 사우나의 수도 사용량을 추적했다. 또 모텔에서는 침대시트.수건 등 세탁물량을 파악했다. 이런 방법으로 국세청은 이씨가 사우나에서 7억원, 모텔에서 3억원의 매출을 빼돌린 것으로 추정했다. 국세청은 이씨에게 소득세 등 세금 4억원을 추징했다.

#사례 2=서울에서 대형 한식당을 운영하는 이모(40)씨는 2003~2004년 24억원을 벌었지만 세무서에는 매출이 6억원이라고 신고했다. 신용카드로 받은 수입만 신고하고 현금 매출 18억원은 빼돌린 것이다. 이 기간 중 이씨가 낸 세금은 1억5000만원에 불과했다. 이씨는 최근 5년간 해외여행을 106회나 다녀오고 100억원 규모의 부동산을 샀다가 세무조사 대상으로 떠올랐다. 국세청은 이씨가 식당의 현금 수입을 부인 명의와 별도의 차명계좌에 분산 입금한 것을 찾아내 세금 10억원을 추징했다.

#사례 3=지방 도시에서 대형 뷔페.예식장을 운영하는 김모(58)씨는 자신이 고용한 근로자의 통장을 탈세 수단으로 이용했다. 김씨는 현금을 내는 고객에게 10%를 할인해 주는 방식으로 현금 결제를 유도한 뒤 현금으로 받은 돈 15억원을 빼돌려 종업원 통장에 입금했다가 되찾아가곤 했다. 국세청은 김씨에게 법인세 등 17억원을 추징했다.

건설업자 박모(44)씨도 실제 사용하지 않은 원자재비와 노무비 23억원을 가공으로 장부에 올린 뒤 법인 통장에서 현금으로 인출해 개인 통장에 입금하는 방식으로 돈을 빼돌리는 등 탈세를 일삼다가 법인세와 증여세 등 32억원을 추징당했다.

이런 식으로 돈을 빼돌린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세무서에 자진 신고한 소득이 실제 소득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은 16일 고소득 전문직.자영업자 319명에 대한 2차 표본조사 결과 이들은 2003~2004년 벌어들인 소득 5516억원 중 2331억원만 신고하고 나머지 3185억원을 누락했다고 밝혔다. 소득의 57.7%를 빼돌린 것이다. 이들은 1년에 평균 8억7000만원을 벌면서 3억7000만원만 벌었다고 자진 신고한 것이다. 국세청은 319명에 대해 1065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이들은 2년간 자진 납부한 세금 495억원(1인당 1억6000만원)의 2.1배를 추징당했다.

국세청이 3월 422명의 고소득 전문직.자영업자에 대해 1차 표본조사를 했을 때도 평균 소득탈루율은 56.9%였다. 국세청 오대식 조사국장은 "이번 조사 대상자 중 상당수가 탈루 소득으로 호화 해외관광을 하거나 부동산 투기를 했다"며 "앞으로 일반 사업자라도 지능적으로 탈세를 한 것으로 밝혀지면 예외없이 조세범처벌법을 적용해 세금 추징뿐 아니라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또 이날부터 탈세 혐의가 짙은 고소득 전문직.자영업자 362명을 대상으로 3차 표본조사에 들어갔다. 조사 대상은 ▶기업 자금을 유용하거나 탈세한 자금으로 부를 축적한 탈세 혐의자 99명▶병원과 대형 약국 94명▶도소매업.집단상가.전자상거래 업종 92명▶변호사.세무사.회계사.법무사 등 전문직 사업자 77명 등이다.

김창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